[횡설수설]육정수/「뇌물 경조금」

  • 입력 1999년 3월 9일 19시 04분


경조사때 서로 부조하는 풍속은 형태는 다르더라도 어느 사회에나 있게 마련이다. 우리의 부조관행은 조선시대 향약(鄕約)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향약은 당시 인구 1천명 내외였던 면단위 정도의 지역사회를 운영하기 위한 주민들의 약속이었다. 그 약속 중 하나가 관혼상제때의 부조였다. 그러나 향약은 주민자치가 아닌 관(官)주도로 운영되어 강제성을 띤 것이 흠이었다.

▽양반을 능욕한 상민(常民)은 상벌(上罰), 상민이 양반 옷을 입으면 중벌(中罰), 부조에 불참하면 하벌(下罰)에 처했다. 그러고도 부조를 거부하면 마을에서 쫓겨났으니 부조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丁若鏞)은 목민심서에서 ‘향약의 폐단은 도적보다 더하다’고 혹평했다. 다산의 지적은 오늘날에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부조가 순수한 인정을 벗어나 양반에 대한 뇌물수단으로 변질돼버린 점을 한탄한 것이다.

▽최근 고위공직자들의 재산변동신고결과 경조금 수입으로 재산이 늘어난 공직자가 적지 않다고 한 시민단체가 지적했다. 일부의 경우 억대의 경조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우선 놀랍다. 전체 재산증가규모는 신고하면서도 경조금 액수는 분명히 밝히지 않거나 아예 신고조차 하지 않은 공직자도 있다. 재산공개제도의 허점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재산공개내용에 대해 철저한 실사(實査)가 있어야겠다.

▽물론 경조금은 일률적으로 많다 적다 할 수 없다. 최근 현역 국회의원 딸의 축의금관련 세금소송에서 전대통령 한명이 5백만원의 축의금을 낸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빈부와 신분에 따라 어느 정도의 차이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사회통념을 넘는 액수에는 뇌물성격이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육정수 논설위원〉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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