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사망자 유가족과 부상자들이 1일 당시 진압부대인 3공수여단을 방문해 화해행사를 가졌다. 5·18 피해자들이 진압부대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이들이 그동안 정부청사나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농성을 한 일은 많았다. 진압부대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상층부의 명령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군부대가 벌인 과잉진압도 문제였다.
▽서울에 주둔하는 3공수는 시위진압부대 중 최정예로 시민저항이 심각해진 80년 5월20일 아침 광주에 투입됐다. 먼저 도착한 7,11공수와 20사단 병력이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그날부터 광주에서는 시민과 진압부대 사이에 대격전이 벌어진다. 최초의 총성이 20일 밤 11시경 광주신역에서 터졌다. 27일 새벽 전남도청의 시민항쟁 본부를 공격한 선봉역도 3공수 특공조가 했다.
▽광주시민에게 3공수는 그래서 ‘유명한’ 부대다. 5·18피해자들이 그 부대에 화해의 손을 내민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부모형제에게 발포한 부대와 악수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킹 목사의 64년 노벨평화상 수상연설 중 “갈등 해결에서 보복과 침략을 거부하는 방법을 발전시키자”고 한 대목이 되새겨진다. 광주 피해자들의 진압부대 방문이 화해의 미학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김재홍〈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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