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헌진/경실련의 「나 몰라라」행태

  • 입력 1999년 2월 25일 19시 24분


지난해 7월 국회의원 2백83명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법원 판결에 대해 뒤늦게 아우성을 치고 있다.

경실련은 당시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공전시켜 입법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아 국민이 손해를 봤다”며 시민 1천1백23명의 서명을 받아 1인당 10만원씩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었다.

경실련의 소송 제기는 당시 국민의 지대한 관심을 모았다. 6개월 이상 계속되는 여야의 소모적 정쟁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극에 달해 있었고 경실련이 승소할 경우 정치개혁의 시발점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법원도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사건을 합의부에 배당하는 등 법리(法理)를 통한 국회와 경실련의 ‘한판 싸움’에 대비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경실련은 법정에서 치열한 법리공방을 벌이기는커녕 자신들이 소장에서 주장한 내용의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재판부는 경실련에 국회의원의 입법활동 지연에 관한 위법성과 구체적인 피해사례를 제시하라고 수차 주문했지만 경실련은 선고 때까지 제출하지 않았다.

경실련은 또 자신들이 본안소송에 앞서 낸 국회의원 세비 가압류신청을 재판부가 기각했음에도 본안소송에서 이기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경실련이 제출한 자료는 30여쪽짜리 국회 공전과 관련한 신문기사 스크랩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경실련은 25일 자신들이 낸 손해배상소송을 재판부가 기각하자 “재판부가 정치권을 의식해 갑자기 선고를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치밀한 준비없이 문제만 덜렁 제기해 국민의 시선을 끈 뒤 ‘나 몰라라’하는 식은 책임있는 시민단체가 취할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헌진(사회부)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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