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게 삽시다 8]켈로그社 前사원의 사례

  • 입력 1999년 2월 25일 19시 24분


미국 미시간주의 배틀크릭. 디트로이트와 시카고의 사이에 있는 전원도시.

1m가 넘게 쌓였던 눈이 20년 만의 이상고온(異常高溫)으로 이틀만에 녹아버린 지난 11일 오후. 이 곳 사회복지관 버남브룩센터의 대강당에선 2백여명의 노인이 빈 칸의 숫자를 맞춰가는 빙고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맨 뒤쪽에서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마거릿 스펜서(76)할머니. 1주일에 한 두 번 이 곳에서 4∼5시간씩 빙고를 한다.

“빙고가 치매 예방에 좋대요.”

그는 평소 집에서 TV나 책을 보다가 심심하면 이 곳에 와 시간을 보낸다.요리 도자기만들기 아코디언 등을 배우고 수중체조 포켓볼 등을 즐길 수도 있다.

“플로리다나 캘리포니아의 실버타운에서 편안하게 살 수도 있지만 남편이 묻힌 이 곳을 떠나기가….”

스펜서할머니는 46∼79년 34년동안 이 곳에 본부가 있는 세계최대의 시리얼 제조사 켈로그사(社)에서 일했다. 회사에서 주는 연금과 의료혜택 등으로 그는 노년을 넉넉하게 살고 있다.

미국인구통계국과 건강통계센터에 따르면 97년 현재 미국 인구 2억7천만명 중 65세 이상 노인은 12.7%인 3천4백10만명. 96년 현재 노인가족의 연간 평균소득은 3만6백60달러(약4천4백만원).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재산은 평균 8만6천3백달러(약1억원)로 미국인 전체평균 3만7천6백달러보다 훨씬 많다.

유럽 각 국에서는 정부가 노인복지를 책임지고 있다면 미국은 그 몫의 상당 부분을 기업들이 안고 있다. 미국 기업은 직원들의 퇴직 후 생활비를 책임질 뿐 아니라 사회복지관 자원봉사단체 등에 자금을 지원해 은퇴자들이 ‘비빌 언덕’까지 마련해 주고 있다. 미국의 젊은 직장인들도 노년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연봉과 스톡옵션(우리 사주 주식) 등을 많이 받을 수록 은퇴 후 받는 돈이 많기 때문.

▼기업은 퇴직자에게 얼마나 주나

미국에서 연봉과 연금 등은 ‘1급 프라이버시’. 스펜서할머니도 “얼마를 받는지 묻지 말라”고 정색하면서 “34년 간 재직한 켈로그사에서 생활비의 대부분을 받는다”고만 말했다.

켈로그사 직원은 퇴직 무렵 연봉이 4만5천달러(약 5천4백만원)일 경우 ‘기업 연금’으로 매달 1천달러(1백20만원)을 받는다. 또 매달 봉급의 5%를 적립하는 ‘401K’제도(일종의 퇴직금제도)를 통해 퇴직 때 최소 8만3천여달러(1억원)를 챙긴다. 401K 적립금의 80%는 회사에서 지원한다. 재직 중 받은 스톡옵션으로 수 억원을 벌기도 한다.

여기에다 국민연금으로 한 달에 8백30달러(1백만원) 이상 나오기 때문에 돈을 주체할 수 없는 노인이 많다. 켈로그사에선 퇴직자에게 퇴직 전 5일 동안 매일 오후 2시간씩 돈을 효율적으로 쓰는 법을 가르친다.

▼돈만 주는 것이 아니다

켈로그사는 매년 이익금의 일부를 켈로그파운데이션을 통해 공익자금으로 내놓는다. 지난해에는 2억8천만달러(3천3백60억원)를 내놓았는데 이 중 11%인 3천2백만달러(3백80억원)는 사회복지관이나 봉사단체의 지원금. 켈로그사 은퇴자들의 자원봉사활동이나 취미생활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데 쓰인다.

켈로그사는 ‘은퇴자 도움 전화’도 운영한다. 은퇴자들이 자원봉사활동을 하도록 연결해 주고 금전문제나 자녀문제 등에 대한 상담도 한다. 이 회사 퇴직자의 10%가 이 전화의 도움을 받고 있다.

〈배틀크릭(미 미시간주)〓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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