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돈에 눈 먼 식약청

  • 입력 1999년 2월 10일 18시 59분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의약품안전국장이 사무실 책상서랍과 캐비닛에 현금 2천8백만원을 보관하고 있다가 적발됐다. 어처구니가 없다. 제약회사 간부들이 다녀간 직후 정부 암행감찰반에 적발됐다고 하니 뇌물로 챙긴 돈일 것이다. 지난달 하순에는 식약청장이 1억8천5백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식약청에 어째서 이런 일이 잇따라 일어나는가.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사정(司正)작업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지난해 말 당국의 언급은 빈말이었음을 입증한다.

식약청은 96년 보건복지부 산하 식품의약품안전본부를 거쳐 지난해 2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외청으로 승격돼 독립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같이 국민에게 높은 신뢰를 받는 기관이 되기를 기대한 조치였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식약청의 역할을 되돌아보면 신뢰는커녕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국민건강과 직결된 사회적 문제가 돌출될 때마다 유관업체편을 드는 듯한 태도를 보여 끊임없이 의구심을 사왔다. 이번 일련의 뇌물파동으로 미루어 보면 식약청에 대한 의구심이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식약청 하면 이제 잿밥에만 신경 쓰는 ‘뇌물수수청’으로 각인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식약청은 두말할 나위 없이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 따라서 국민건강을 팔아 뇌물이나 챙기는 소속공무원이 있다면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뇌물을 받는 자체가 중대범죄일 뿐만 아니라 국민건강의 파수꾼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다. 식약청이 뇌물에 눈이 멀면 국민건강은 안중에 없게 될 것이고 그러면 국민건강은 기댈 곳이 없게 된다. FDA가 미국 국민의 전폭적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신속하고 권위있는 조치로 국민건강을 완벽하게 책임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식약청은 어떤가. 환경호르몬과 맹독성 농약채소, 방부제 함유 통조림 등이 문제로 제기될 때마다 갈팡질팡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등 안이한 자세로 불신을 가중시켜 왔다. 환경단체나 소비자단체가 일정한 근거를 내세워 문제제기를 해도 성의있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 뇌물파동은 그런 식약청에 대한 가느다란 기대마저 완전히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국민의 신뢰 없이 식약청이 설 자리는 없다. 식약청의 유일한 잣대는 국민건강이 돼야 한다. 식약청 고위간부들이 돈에 눈이 멀어 FDA의 흉내나 내면서 자리만 보존하려 한다면 곤란하다. 식약청이 출범한 이후 불량식품과 의약품이 과연 줄어들고 있는지 국민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전면개혁이 없는 한 식약청은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 국민건강문제에 적당주의는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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