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36)

  • 입력 1999년 2월 9일 19시 05분


로자 룩셈부르크는 국민 방위군의 장교들에게서 총 개머리판으로 뒤통수를 맞고 개처럼 쓰러졌다. 이미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녀의 머리를 중위가 권총으로 한 발 쏘아 확인 사살을 했다. 그들은 로자의 시체를 트럭에 싣고 가다가 티어 가르텐 근방의 란트베어 운하에 던져 버렸다. 그녀의 기념비에는 ‘지지배배’ 하는 작은 새의 노래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누군가 던져 둔 그녀의 상징, 붉은 카네이션 몇 송이가 말라붙어 있을뿐. 내가 거기서 멀지않은 벤치에 앉아서 브뢰첸 빵을 먹던 생각이 난다.

나는 이곳으로 돌아올 거야. 그리구 풋내기 시인에게 맛난 걸 해줄 거야. 그가 돌아온다면 그리고 내가 나중까지 남아 늙은 그를 임종해 줄 수 있다면. 허나 우리가 처음에 시작했던 그 알음알이는 도대체 지금 와서 무엇이었을까. 눈에 밟힐듯한 꿈이 점점 연기처럼 빠져 달아나고 어느 한 대목 똑똑히 떠오르는 장면 하나 없을 때 이 막연함을 사랑이라고 부르다니. 전혀 다른 모양으로 이지러진 당신과 여기 이곳의 나. 어느 할머니의 입 말을 그대로 적어본다.

꿈 꾸믄, 자다 깨구 나믄 다 잊어 버려. 요즘에는 쪼금 정신두 젊어서와 같지 않은가봐. 아유 숭칙해라 우쩔라구 이런 꿈이 꿔지나? 그르다가 가리사초를 못 잡어. 암만 생각할라 그래두 먼첨 야중 이걸 마출래믄 안 맞아져. 죽은 사램덜을 좀 봤이믄…. 그른데 꿈에 죽은 사램 보믄 아주 더 싱거워. 이거 호박뎅이 보는 거 같어, 멀거니. 저기 지나가는 개는 제 식구 보믄 꼬리 치잖어? 이건 멍청히 가는 게 개만 못해여. 말이 통허질 않으니께.

동진 태원 년간에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는 한 무릉군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그가 냇물을 따라 올라갔는데 그 노정의 원근조차 잊어 버렸다. 그런데 홀연 복사꽃 숲을 만났다. 두 기슭 수백 보 구간엔 다른 잡나무는 한 그루도 없고 아름답고도 싱싱하게 핀 향초 위에 오색이 영롱한 꽃잎들만 나풀나풀 흩날렸다. 어부는 너무도 신기하여 복사 숲의 끝까지 보고저 다시 배를 저어 앞으로 나아갔다. 복사 숲은 냇물의 발원지에서 끝나는데 산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 산에는 자그마한 굴이 있었고 거기서 어렴풋한 빛이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부는 배를 매어 놓고 그 동굴 어구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극히 비좁아서 겨우 한 사람이 통할 수 있었으나 수십 보 더 들어갔더니 눈앞이 확 트였다. 그곳의 땅은 평탄하고도 넓었으며 아담한 집들이 줄지어 있는 두리에 기름진 옥답과 수려한 늪이 보이고 뽕나무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논밭 사이로 길이 종횡으로 쭉쭉 뻗어 있었고 닭과 개가 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거기서 오가는 사람들은 한창 농사일에 분주했는데 남녀의 옷차림새는 모두 바깥 세상 사람들과 같았다. 늙은이와 어린이들도 모두 유유자적한 즐거운 기색이었다.

그 어부는 돌아오면서 다음을 생각하여 곳곳에 표시를 남겨 두었다고 한다. 돌아와 관가와 이웃 사람들에게 자신이 보았던 마을에 대하여 얘기하고 찾아 나섰지만 다시 찾아갈 수는 없었다. 그는 늙어 죽기 전까지 여러차례 그 길을 찾으려고 애를 썼지만 영영 찾지 못했다. 마을에 대한 이야기는 그 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는데 그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찾아 적는다.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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