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네탓 타령」청문회

  • 입력 1999년 1월 21일 19시 30분


사흘째 속개된 경제청문회를 지켜보는 국민의 심정은 착잡하다. 외환 금융위기의 원인 규명을 위한 청문회인데도 관련기관마다 환란의 책임을 둘러싸고 ‘네탓’만 무성하다. 정치권도 스스로의 책임은 뒷전으로 미뤄둔 채 총론적 경제정책 실패만 집중추궁하는 질책성 질의로 일관하고 있다. 이래가지고 외환위기의 본질과 근본원인을 밝혀내고 재발방지를 위한 교훈을 얻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이번 청문회는 기관보고나 듣자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환란책임의 중심에 서 있는 재정경제부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의 환란보고는 천편일률적이다. 하나같이 우리경제의 구조적 모순에서 환란의 원인을 찾고 있다. 과다차입에 의한 기업의 중복 과잉투자, 금융시스템의 취약, 금융감독의 불철저 등이 근본원인이었으며 위기대처 미흡, 환율정책과 외환보유고 관리 등의 정책실패는 다른 기관 탓이라고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환란의 직접적인 원인이 정책의 실패 때문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95년 이후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는데도 환율정책 운용은 보수적이었다. 그 결과 경상수지방어에 실패했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서둘러 가입하기 위해 국내 금융 자본시장을 무턱대고 연 것도 화근이었다. 97년부터는 금융위기 징후가 구체적으로 나타났으나 금융기관 부실채권 누증문제를 도외시했다. 종금사를 비롯한 부실금융기관의 조기정리 방안 등 금융시장 안정정책도 강구하지 못했다.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상황에서 부도유예협약과 협조융자제도를 도입해 금융시장혼란을 가중시켰다. 여기에 한보와 기아사태의 잘못된 처리가 외환위기발생을 결정적으로 앞당겼다. 그같은 총체적 정책실패가 국민경제를 부도직전의 위기상황으로 몰고 갔다. 국민에게는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고통과 시련을 안겨주었다.

경제청문회는 이같은 정책실패를 부른 구체적인 과정과 정책결정 시스템의 잘잘못을 가리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청문회는 정책감사 형식이 되어야 한다. 관련기관의 보고서나 자료 또한 무작정 책임회피나 변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책대응의 적합성 합목적성 등을 입증하는 것이어야 한다. 환란 책임의 총론은 인정하면서 각론에 있어서의 구체적인 답변은 얼버무리는 자세여서는 안된다.

이번 청문회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폭로청문회나 표적청문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물론 청문회 과정에서 한보와 기아사태, 종금사 인허가와 관련한 정경유착 등의 비리가 드러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고 법적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