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사시정원과 기득권수호

  • 입력 1998년 12월 18일 19시 08분


기원전 5∼4세기 그리스의 소피스트(sophist)는 변호사의 원조(元祖)라 할 만하다. 당시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등은 많은 보수를 받고 변론술과 입신출세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쳤다. 시대적 요청에 따라 가장 중요했던 과목은 변론술. 그들은 특히 청년들에게 선(善)을 가르친다는 자부가 대단했다. 그러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착한체 하는 기술만 가르친다고 그들을 비난했다.

▼소피스트들은 그 뒤 ‘궤변학파’라는 꼬리를 달고 다녔다. 진리보다 논쟁 자체에 탐닉하는 것을 빗댄 것. 2천5백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궤변학파의 전통은 법조계에 전수되고 있는 것 같다. 법조계 이익이 걸린 문제에는 여야, 재조(在曹) 재야(在野)를 가리지 않고 율사(律士)들이 궤변으로 똘똘 뭉친다. 전문직 부가세와 사법시험 정원문제가 최근 대표적 예다.

▼내년 사시정원이 올해 수준인 7백명선으로 묶인 것은 정부가 법조계의 궤변에 놀아난 결과다. 99년까지 매년 1백명씩 늘려 2000년 이후에는 1천명 이상씩 뽑는 계획은 95년에 어렵게 일궈낸 소중한 개혁안이다. 이에 합의했던 법조계가 정권교체를 기화로 정원을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와 사법연수생들의 취업난을 앞세웠다. 전 정권때 마련된 것이라고 홀대한 것인지 정부도 못이기는 척 물러서버렸다.

▼개혁안은 값싸고 질 높은 법률서비스, 법학교육 정상화, 변호사 직역(職域)확대 등 여러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다. 내년 합격자는 지금부터 3년 뒤에나 연수원을 나온다. IMF란 한낱 기득권 수호를 위한 핑계에 불과한 셈이다. 사시준비생들만 또 혼란을 겪게 됐다. 정부의 연속성을 믿은 것이 죄라면 죄다.

〈육정수 논설위원〉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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