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장쩌민과 인민복

  • 입력 1998년 11월 29일 20시 07분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미래지향을 역설하는 일본 정치인들에게 ‘과거사 인식’으로 대응해 눈길을 끌고 있다. 25일부터 일본을 방문중인 장주석은 얼마 전 러시아나 지난해 11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미국에서는 영어로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어 중국지도자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그였다. 그렇게 열렸던 그의 가슴이 일본에서는 인민복으로 닫히고 말았다.

▼일본천황 주최 만찬장에 참석한 장주석의 인민복에 쏠린 관심은 예상외로 큰 것같다. 나비넥타이에 연미복을 입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 옷의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중국 인민복은 1911년 신해혁명 지도자 쑨원(孫文)이 처음 착용했다. 그는 한족의 공화제혁명을 성공시켜 중국 좌우파 모두가 국부로 받드는 인물이다. 장주석이 그런 혁명의지가 배어 있는 인민복을 일부러 입고 나타난 것이다.

▼장주석이 와세다대의 명예박사 학위를 거절한 것도 중일 과거사 때문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대학 설립자 오쿠마 시게노부가 총리때인 1915년 일본은 중국에 식민지 이권에 준하는 ‘21개조항’의 협정을 강요했다. 중국정부내 재정 경찰담당 일본인고문제와 철도 광산 섬 항만의 경략권이 주요내용이었다. 와세다 설립자의 족적이 장주석의 역사인식과 충돌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는 도쿄기자클럽에서 일본 정부가 군국주의 미화세력의 역사왜곡을 억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일본 우익청년들의 중국 핵개발 중지와 인권문제 성토로 장주석이 더 강경해졌다는 풀이도 나왔다. 그의 주요국 방문외교는 세계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노린 것이라 볼 수 있다. 그가 일본에서 과거사 관련 경고발언을 한 것도 그 일환이다. 그의 ‘인민복 분투’가 효험이 있을지 궁금하다.

〈김재홍 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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