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차웅/가슴저민 「금강호」

  • 입력 1998년 11월 22일 19시 46분


금강호가 돌아왔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길을 열고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반세기 만에 북녘땅 한 귀퉁이를 애써 열었다는 기쁨보다는 분단의 아픔을 새삼스레 느끼게 해준 뱃길이었다. 무엇보다 북녘땅을 밟고도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던 이산가족들이 딱하기만 하다. 그들로서야 금강산 경치가 아무리 빼어난들 눈에 제대로 들어왔을까 싶다.

▼그래서일 것이다. 금강산 산행길에 미리 준비해 간 제수를 차려놓고 조상에게 즉석 제사를 지낸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더욱 가슴을 울리는 것은 귀항길 뱃전 여기저기서 북녘을 향해 터져나왔다는 목멘 외침들이다. “오마니, 가 왔다 갑니다.” 기대와 설렘을 안고 떠났다가 아쉬움과 통한(痛恨)만 안고 돌아온 실향민들의 마음이 이 한마디에 담겨 있다.

▼금강호가 싣고 온 많은 사연 중에서 박순용씨(76)의 경우는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장전이 고향인 박씨는 19일 북한땅을 밟자마자 북한측이 내건 플래카드를 가리키며 “당신들 ‘금강산관광객들을 동포애의 심정으로 환영한다’는 말에 책임져야 해”라며 북한당국자에게 어머니의 생사확인을 떼쓰듯 부탁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박씨는 그 다음날 어머니가 10년전에 돌아가셨으며 장전에 묘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애틋한 사연이 어디 이뿐이랴. 저마다 가슴저미는 아픔을 안고 돌아왔을 것이다. 이들의 맺힌 한을 풀어줘야 한다. 어렵게 금강산 길을 연 것처럼 장전항이나 판문점에 이산가족상봉소를 만드는 일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남북한 당국이 열의를 보여야 한다. 그것없이 관광만으로는 이산가족들에게 더 깊은 한을 쌓게 할 뿐이다.

김차웅<논설위원>cha4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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