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들어서는 골목 어귀에서 나는 이웃 학교에 다니는 동네 친구와 마주쳤다.
―어? 너 학교 안 갔냐?
―중간고사 봤어. 너는?
―오늘 영화 단체관람하거든. 깜빡 잊고 극장값을 안 가져와서 집에 왔다 가는 거야. ‘쿼바디스’라는데 같이 갈래?
―안 가. ‘섬머타임 킬러’라면 몰라도.
말은 퉁명스럽게 하면서도 내 걸음은 친구 뒤를 따라갔다. 단체관람이면 극장비가 반값이었고 또 빵집에 가지 않은 데 대한 후회를 잊기 위해서는 다른 인간 속에 섞일 필요가 있었다. 말하자면 군중 속의 고독을 선택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세상은 내 고독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았다.
영화가 시작한 지 10분쯤 됐을까? 어둠속에서 내 뒷덜미를 붙잡는 억센 손아귀가 있었다. 우리 학교 교관이었다. 선생님보다 대위님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하는 그는 교련뿐 아니라 ‘1교 1기’의 문교부 지침에 따라 전교생에게 유도도 가르치고 있는 믿음직한 덩치에 잔뜩 힘을 실어서 내 머리통을 쥐어박고 뺨을 두어 대 갈겼다. 그런 다음 쇠갈고리 같은 손을 뻗어서 내 왼쪽 가슴에 재봉틀 실로 단단히 박음질돼 있던 명찰을 뜯어냈다.
그 일로 나는 정학을 맞을 뻔했다. 조국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조국은 그 영화가 다음주에는 우리 학교에서 단체관람하기로 예정된 영화라는 말을 듣고 이 사건에 의문을 품었다. 수업시간에 땡땡이를 친 것도 아니고 입장불가 영화도 아니고 여학생과 함께도 아니었다. 교관이 나가 수고스럽게 단속을 할 이유라고는 없었다. 알고 보니 돈 문제였다. 단체관람을 하게 되면 입장한 머리통 수만큼 이익금의 일부가 학교로 떨어지게 돼 있었다. 우리 학교 학생의 머리통이 다른 학교 교무실의 회식비를 보태주지 못하게 하기 위해 교관이 파견된 건지도 모른다.
그 나이에는 누구나 갖고 있는 만큼의 정의감과 우정, 그리고 잘난 체를 참지 못한 조국은 이 의혹을 널리 퍼뜨렸다. 그것이 선생들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 없었다. 교무실에서는 극장 사건을 너그럽게 덮어주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나 이외에도 명찰을 뜯긴 아이들은 열 명 남짓이었다. 그애들은 만수산 4인방에게 ‘내 이번 일로 큰 은혜를 입었소이다’며 추켜세웠다. 조국은 우쭐했다. 대단히 정의롭고도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처럼 ‘저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만’이라고 겸손해 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듯이 그 일이 교내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대 사건은 아니었다. 관심을 갖는 것은 만수산 4인방과 명찰을 뜯긴 애들뿐이었다.
체면이 깎인 선생들은 달랐다. ‘저놈, 무슨 일로든 한번 잡히기만 해봐라’ 하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나 공명심은 사람의 주의력을 떨어뜨린다. 조국은 후환이라면 지나칠 정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것을 의식하고 경계할 만큼 사려깊은 것은 나뿐이었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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