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교내폭력과 학교책임

  • 입력 1998년 11월 1일 19시 59분


학교내에서 일어난 폭력에 대해 가해 학생은 물론 그 부모와 학교, 감독기관까지 공동으로 책임을 물은 최초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지법은 피해 학생과 가족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가해 학생 부모들에게는 ‘자녀의 학교생활에 관심을 게을리한 책임’을, 학교와 감독기관인 서울시에는 ‘적극적인 보호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책임’을 각각 물어 1억5천만원을 연대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학교폭력의 책임소재를 사회 전체로 확대한 판결로 그 취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학교폭력은 피해자나 가족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지만 당사자가 아니면 남의 문제로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번 피해 사례는 학교폭력이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과제임을 보여준다. 고교 1년생이던 피해자는 심장병을 앓아 체육시간에 빠진다는 이유로 급우 5명에게 무려 50여가지에 이르는 괴롭힘을 당했다. 교사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보복폭행이 뒤따랐고 결국 이민의 길을 택했으나 아직도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약점을 지닌 학생만을 골라 못살게 구는 집단괴롭힘의 전형이었다. 그 잔혹성과 폭력성이 끔찍하다.

학교폭력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교육부와 검찰 등 관계당국에서 여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 원인으로 안이하고 형식적인 대처방식을 꼽지 않을 수 없다. 학교에서는 입시지도 등 과중한 업무를 구실로 내세우고 있고 교육당국도 척결원칙만 강조할 뿐 실효성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당사자인 학생 부모 학교와 더불어 서울시의 책임까지 명시한 것은 학교폭력 근절에 지역사회나 관계 당국이 적극 나서도록 촉구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어린 학생들을 이토록 모질고 황폐하게 만든 것은 같은 반 친구마저도 경쟁자로 여기는 살벌한 교육풍토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 학생들은 ‘입시지옥’속에서 심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으며 부모로부터는 ‘맞고 집에 들어오기보다는 차라리 남을 때리라’며 경쟁에서 무조건 이길 것을 주문받고 있다. 집단괴롭힘은 이처럼 비뚤어진 사회의 단면일 수 있다.

그럼에도 학교폭력은 근본적으로 학교내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는 점에서 학교측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학부모들이 일단 자녀를 맡긴 이상 학교는 폭력을 포함한 모든 문제에 책임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교육여건 운운하는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학교폭력이 사회 전체 문제이기는 하지만 결국 해결의 열쇠는 학교가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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