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병기/「우리」아닌 「남」에 대한 예의

  • 입력 1998년 10월 6일 19시 27분


한국인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에 대한 태도가 너무 다르다’고 외국인들은 불평한다. ‘우리끼리’에만 신경을 쓰지 ‘남’에 대해서는 배려나 예의가 없다는 뜻이다.

추석귀향길 한 고속도로휴게소에서 겪은 일이다.

화장실 안에 앉아있는 동안 노크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었다. ‘똑 똑 똑’은 아예없고 ‘똑 똑’은 열에 한 두명. 대부분은 주먹으로 ‘쾅’하고 한두번 치고 갔다. 문에다 발길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로 다시 만날 일이 없는 ‘남’이라는 상황 때문이다.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익명적’ 상황의 커뮤니케이션이기에 더 그럴 수도 있다.

아는 사람, 윗사람 아랫사람이 공존하는 직장내 노크문화와 한번 비교해보자.

직장내 화장실에서야 그런 무례는 있을 수 없다. 아는 사람들의 공간속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조심한다.

똑같은 사람의 행동이 장소나 상황에 따라 이렇게 다른 것을, ‘우리’ 아닌 ‘남’에 대한 예의나 배려가 부족한 부끄러운 모습을 우리는 수시로 본다.

평소 점잖은 사람이 도로에 차를 세워두고 생떼를 쓰며 다른 운전자들의 귀한 시간을 앗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역사의 종언’의 저자 후란시스 후쿠야마는 ‘트러스트’라는 책에서 한국인의 이런 모습을 꼬집는다.

‘익명인끼리 모여 사는 시민사회에서는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룰이 구축돼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시민사회 구성원간에 신뢰감이 없어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할 수 없다.’ 그런 가설의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조차 없다. ‘남’에게 에티켓을 다하지 못하고 ‘익명 사회’의 룰을 지키지 않으면 기본이 그르쳐진 사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병기<사회부>watch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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