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슈뢰더 선택한 독일

  • 입력 1998년 9월 28일 19시 06분


독일이 새로운 정치의 장을 열고 있다. 헬무트 콜총리의 16년 집권이 막을 내리고 60년대 후반의 유럽 학생운동세대인 게르하르트 슈뢰더시대가 도래했다.

슈뢰더가 이끄는 사민당의 이번 총선 승리는 여야 정권교체와 더불어 냉전시대 정치인이 퇴장하고 신세대 정치인이 등장하는 세대교체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독일에도 유럽의 새 물결이 밀려와 보수 우파정권을 밀어내고 중도좌파 정권이 등장한 것이다.

독일 국민이 동서독 통일을 이룩한 콜총리 대신 50대의 슈뢰더를 선택한 이유는 자명하다. 정체된 제도와 이념으로는 21세기를 대비할 수 없다는 유권자들의 위기의식과 장기집권에 대한 염증이 함께 작용한 것이다.

통독(統獨)이후의 경제난과 이에 따른 심각한 실업률이 유권자들의 변화욕구를 자극하는 직접적인 촉매가 됐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사민당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계층은 처음 선거를 치른 3백여만명의 10대 유권자라는 집계다. 그들은 변화를 갈구하는 핵심 세대다.

슈뢰더는 그동안의 경제활성화와 사회정의를 정책의 두 축으로 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급진적 좌파성향인 녹색당과의 연정(聯政)도 약속했다. 현재로서는 사민당과 녹색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상태여서 두당만의 연정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녹색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해체, 원자력발전소 폐쇄 등 다분히 이상주의에 치우쳐 있어 사민당의 정책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사민당과 기민 기사당과의 대연정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유럽통합문제를 비롯한 슈뢰더의 대외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유럽은 지금 의미심장한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독일의 사민당 집권으로 유럽연합(EU) 15개 국가에는 거의 모두 중도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여기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초월해 두 이데올로기의 장점을 통합하려는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의 ‘제3의 길’이념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슈뢰더 역시 국가의 일정한 시장 개입, 고용창출을 통한 실업대책 등을 강조하며 독일식 ‘제3의 길’에 관심을 보여왔다. 슈뢰더가 ‘제3의 길’을 독일에 어떻게 접목해 갈지 주목된다.

우리와 독일간의 관계는 슈뢰더가 등장했다 해서 별다른 변화가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최근 방한(訪韓)했던 로만 헤어초크 독일 대통령도 어느당이 집권하든 양국간의 기존 우호관계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독일 사민당의 집권은 유럽정치의 이데올로기 지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독일국민의 선택을 눈여겨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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