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日의 자유무역지대 제안

  • 입력 1998년 9월 17일 19시 20분


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주한 일본대사가 한일(韓日)양국의 자유무역지대 추진을 제의했다. 오구라대사의 단순한 개인 의견으로 보기는 어렵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앞둔 시점에서, 그것도 공식석상에서 한 제의다. 일본 외무성의 한 고위관리는 지난 7월에도 우리측 인사에게 이번과 똑같은 제의를 했다. 자유무역지대에 대한 일본측 관심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일 양국이 서구권의 규범을 따라가는데 급급한 실정’이라는 오구라대사의 지적은 국제통화기금(IMF)체제아래 있는 우리에게도 와 닿는 것이 사실이다.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지역경제권으로 통합되고 있는데도 한일 양국은 엄밀한 의미의 지역경제블록에 속해 있지 않다. 그래서 ‘자유무역지대나 경제통합지대 설립 가능성에 대해 민간 또는 공공기관에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그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한일 양국간에는 그같은 경제협력 이전에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우선 과거사가 명백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식민통치로 야기된 불신의 감정이 해소되지 않는 한 양국간 자유무역지대나 경제통합지대 설립은 어렵다.

무엇보다 국민정서가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상품이 범람하다보면 또다른 경제적 지배에 대한 우려도 나올 수 있다. 중국이나 미국 등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봐도 그렇다. 결국 ‘엔화블록’이 될 가능성이 큰 그같은 역내협력체를 중국이 탐탁하게 생각할 리 없다. 지금까지 동북아 경제에 사실상 주도적 역할을 해온 미국 또한 중국의 입장과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일 두나라의 경제사정을 봐도 당장은 경제블록 설립이 시기상조임을 알 수 있다. 어느 나라와든 유리한 자유무역지대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상대국의 시장규모가 클수록 좋고 산업구조면에서 상호보완성이 높아야 한다. 또 상대국의 관세수준이 높을수록 유리하며 주변국가에 진출할 수 있는 거점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일본과의 관계를 보면 현재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이란 일본의 시장규모가 크다는 것 뿐이다. 상호 보완적이라기보다는 경합, 경쟁관계에 있는 분야가 많고 우리의 관세율이 약 8%인데 비해 일본 관세율은 4.6%로 엄청나게 낮은 수준이다. 지금의 대일(對日)무역역조는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본의 제의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도움 줄 수 있는 경제협력은 어떻게 하든 강구해 나가야 한다. 지금은 일본의 제의에 무조건 등을 돌릴 것이 아니라 큰틀에서 냉정히 경제적 전망을 해보는 슬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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