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박태영/기업 구조조정만이 살 길이다

  • 입력 1998년 8월 26일 19시 29분


지금 세계경제는 서구기업들의 대규모 인수합병(M&A) 러시로 세계 기업구조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독일의 다임러 벤츠는 미국 자동차업계의 빅3 중 하나인 크라이슬러와 합병했고 항공업계의 보잉사는 세계 3위의 맥도널 더글러스사를 인수했다.

미국의 GE사는 프랑스 톰슨사와 TV 및 의료기기부문 사업교환을 통해 초일류 기업으로 다시 태어났고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숙적인 애플사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기업연합’의 저자인 조던 D 루이스는 “개방화 세계화시대를 맞아 이제는 어느 한 기업의 능력만으로는 방대한 시장규모와 기술력을 소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이같이 급변하는 여건 속에서 한국 기업들은 세계의 조류와는 전혀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5대그룹은 평균 30개 업종을 영위하며 52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백화점처럼 잡다하게 벌여놓았지만 규모면에서 세계적인 기업들과 경쟁하기에는 영세성을 면하지 못한다.

일부 계열사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지급보증과 내부거래를 통해 버티면서 결과적으로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악화시켰다.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들은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주요 업종에 경쟁적으로 투자해 국내외의 수요를 초과하는 과잉설비를 떠안고 있다.

항공기 제작산업을 예로 들어보면 4개 업체가 난립해 있으나 이를 모두 합쳐도 세계 10대 기업에 들지 못하는 실정이다. 철도차량과 발전설비 공급능력도 수요의 2∼3배를 초과한다.

5대 그룹의 부채비율은 473%에 달해 미국 154%, 일본 193%를 크게 웃돌고 있다. 금융비용이 높은 여건에서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영위하게 되면 그 결과는 자명한 것이다.

한국 기업들의 연구개발(R&D) 투자가 미흡한 것도 결국은 이렇게 불합리한 경영전략에서 비롯된다. 훨씬 앞선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 업체들은 매출액의 5%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으나 한국 기업들은 3.6%에 불과하다. 석유화학 산업의 경우 세계적인 기업들의 R&D 투자비중은 4∼7%인데 비해 국내기업은 2%를 넘지 못한다.

물론 5대 그룹을 포함한 한국 기업들이 그동안 고도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사업다각화의 장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 기업 모두가 ‘패러다임의 전환’에 나서야 할 때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으로 국경없는 경제전쟁이 한층 가열되면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한 변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5대 그룹을 포함한 국내기업들도 과감히 환부를 도려내고 주력 분야에 핵심역량을 집중함으로써 세계 1류 기업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작년 11월 한국은 국제경제의 냉혹한 현실 앞에서 국가부도의 위기를 체험했다. 지금도 1백50만명이 넘는 실업자가 거리로 내몰렸고 매일 70∼80개 기업이 도산하고 있다.이같은 경제위기는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 금융기관의 부실, 기업의 방만한 경영 등 한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에 기인한 것이다.

국민의 정부는 출범 이후 경제난 극복을 위해 정부 금융 기업 노동시장 등 4대 부문의 구조개혁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앞으로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칙을 바탕으로 한국 경제의 활력 회복을 위한 개혁을 힘차게 밀고 나갈 것이다.

정부는 대규모 장치산업의 전문화를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또한 섬유 등 노동집약적 경공업의 고부가가치화와 정보통신 신소재 영상산업 등 21세기를 주도할 지식집약 산업의 육성을 통해 제2의 도약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한다.

산업현장에 나가보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기업인들의 열성과 근로자들의 의욕이 결코 식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정부 기업 근로자 등 모든 경제주체가 힘을 합치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약속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조기에 극복하고 2000년부터 희망찬 도약의 길로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특히 제조업 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5대 그룹이 적극적인 구조조정에 나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5대그룹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선에서 앞장서줄 것을 기대한다.

박태영<산업자원부 장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