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석호/辯協의 「자업자득」

  • 입력 1998년 8월 26일 19시 29분


과거 권위주의 정권들은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는 변호사들을 향해 ‘변호사 징계권’을 휘둘렀다. 그 시절 변호사 가운데 이병린(李丙璘·작고) 한승헌(韓勝憲·감사원장) 강신옥(姜信玉) 태윤기(太倫基)씨 같은 분들이 정권의 ‘입맛’을 거스르다 구속되거나 법정을 드나들기조차 못했다.

명색이 ‘인권’변호사라 불리면 눈치를 살피며 극도로 주변을 깨끗이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93년 이른바 문민정부 시절 변협이 징계권을 되찾을 때까지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최근 변호사 징계권을 국가에 돌려주도록 한다는 규제개혁위원회의 방침이 공개되자 변협은 물론 일선 변호사들이 들고 나섰다. 변호사들은 “정부 방침은 과거로의 회귀”라며 ‘결사항쟁’이라도 벌일 태세다.

공권력에 대한 변호사들의 비판기능을 적지 않게 훼손하고 국가가 시민사회에 대한 권한과 규제를 줄여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에도 어긋난다는 것이 이들 변호사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어떤 변호사도 이런 ‘사태’를 변협과 변호사들이 자초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변협이 징계권을 넘겨받은 93년 이후 사건브로커 고용 등 법조비리가 안으로 곪아가기 시작했지만 변협은 이를 방치한 채 형식적인징계에급급해법조비리에 대한 검찰수사까지 초래했다.

변협이 뒤늦게 자정(自淨)에 나선다고 했지만 강제조사권이 없는데다 당사자들의 거센 반발을 이겨내지 못한 채 유야무야됐다.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사건의 수습은 검찰의 몫이 되었고 결국 징계권‘회수’논의가 나오게 된 것이다.

자율이 안되기 때문에 ‘타율’징계 논의가 일고 있는 것이다. 일부 젊은 변호사들이 “차라리 국가가 우리에게 매를 대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는 뒤바뀐 현실이 안타깝다.

신석호<사회부>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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