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물난리 불가항력인가?

  • 입력 1998년 8월 6일 19시 30분


서울 중부지역 물난리의 원인을 천재(天災)로만 돌릴 수는 없다. 세계적 기상이변이 몰고온 게릴라성 집중호우라고 하지만 사전에 충분히 대비했더라면 피해를 상당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수많은 인명피해와 함께 곳곳이 무너지고 끊어지고 물에 잠긴 이 사상 최악의 사태에는 인재(人災)라는 측면도 적지 않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하루 밤 사이 최고 6백㎜가 넘는 강수량은 불가항력이었지만 어느 정도의 인명피해와 지하철 불통, 가옥침수 등은 막을 수도 있는 재해였다.

이번에도 기상예보가 충분한 경고를 하지 못했다. 기상청은 서울 경기지역에 당초 30∼1백㎜의 비를 예보했다. 호우주의보와 경보를 추가하긴 했으나 물난리에 대비하기에는 이미 늦은 밤시간이었다. 며칠 전 지리산 참사에서 드러난 ‘뒷북예보’가 되풀이된 것이다. 물론 뒤떨어진 장비로 예측불허의 기상상태를 정확 신속하게 예보하는 데는 고충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물난리 역시 불가항력으로만 돌리는 것은 너무나 안이하다. 장비가 문제라면 최신장비를 도입하는 수밖에 없다. 예보관들의 분석능력을 키우는 노력 또한 시급하다.

재해를 최소화하려는 뚜렷한 대책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막대한 인명과 재산피해가 연례행사처럼 계속되고 있는데도 재해에 대한 불감증과 총체적 무방비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재해가 날 때마다 공무원들이 큰 수고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을 동원하고 활용하는 당국의 자세는 매우 소극적이다. 사전에 한가지라도 대비하려는 노력보다는 사후에 하는 척만 하는 고질적 병폐를 고치지 못하고 있다. 가령 피해예상지역 주민을 미리 대피시킨다든가 수해방지시설의 점검과 응급처치, 축대 정비, 교통대란에 대비한 수송대책 수립 등이 그들의 할 일이다.

서울시는 불과 두달 전 70㎜의 비에 지하철 7호선이 침수된 사실을 벌써 잊은듯 이번에 또 7호선이 침수당했다. 재해 직후에는 온갖 대책을 발표하며 호들갑을 떨지만 조금만 시일이 지나면 그만이다. 지리산 참사에서 보듯 재해예고에서 대피, 인명구조에 이르기까지 재난구조체계가 총체적으로 부실하다. 재해를 계속 당할 수밖에 없게 돼 있는 것이다.

서울 일부지역 범람과 침수의 원인이 된 하수와 배수시설의 재정비는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로 대두됐다. 이를 개선하지 않고는 수해방지 시스템은 원시적 단계를 벗어날 수 없다. 더이상 기존 재해대책으로 기상이변에 대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기상이변에 대비하는 기본 틀부터 다시 짜야 한다. 기상이변의 원인과 현상에 대한 깊은 연구, 국제적 협력관계강화 등도 뒤따라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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