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상용/오부치내각과 한일관계

  • 입력 1998년 7월 30일 19시 26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자민당총재가 30일 예상대로 총리로 지명됐다. 그는 의원수의 우위에 힘입어 집권당의 총재와 국가의 총리가 되었지만 국민의 박수갈채와는 거리가 멀고 여당내의 불협화음과 제1야당 간 나오토(菅直人)대표의 등장을 예고하면서 무거운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오부치내각은 땅에 떨어진 국민 지지를 끌어올려야 하고 나라 안팎의 엄청난 압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야당은 참의원선거 승리의 여세를 몰아 중의원 해산,조기총선을 밀어붙이려 할 것이고 자민당은 당분간 이를 저지하는데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사회당과 사키가케가 참가했던 무라야마(村山) 연립내각에서도 자민당은 그들의 입장을 관철시켰지만 앞으로는 일본 국민이 납득할 만한 가시적인 구조개혁없이 파벌역학만으로 지도력을 발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 국민은 자민당을 이탈하여 한때 기세를 올렸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郎)와 ‘깜짝신풍’으로 총리까지 올랐던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에 대한 실망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며 간 나오토의 국민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끄는 민주당에 일본을 맡길 수 있을 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다.

오부치내각이 약속대로 침체된 경기회복에 성공한다면 자민당은 다음 총선에서 재기의 기회를 잡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급속한 지반침하로 이어져 붕괴 또는 분열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오부치내각의 최우선 과제는 외교보다 내정이요 내정의 핵심은 경제살리기라 할 것이다.

재계와 금융계의 신망이 높은 정계 원로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전총리가 대장상을 맡은 것은 그런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관치금융’시절의 인물이어서 함께 대장상으로 거론되던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전관방장관에 비해 신선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외교의 경우도 일차적 과제는 일―러 관계 정상화이고 당면관심은 9월 장쩌민(江澤民)주석의 일본 방문 때 일중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쏠려 있다. 이렇게 봤을 때 당장 일본의 입장에서 한일관계에 대한 관심은 우선순위에서 떨어진다고 하겠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일본방문을 앞에 두고있는 한국은 일본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으며 또한 한국에 대한 일본의 기대가 무엇인지 냉정히 점검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미국방문에서 얻은 성과를, 호재(好材)가 없는 일본방문에서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일관계의 경우는 현안들이 하나같이 두 나라 국민감정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두나라 국민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은 기대하기 어려우며 현실적으로는 상호이해에 바탕을 둔 ‘사려깊은 차선책’으로 문제를 풀 수밖에 없다.

지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3인 후보중 오부치가 당선된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다른 두사람에 비하면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는 한일의원연맹부회장으로서 한국 정치인과의 교류가 비교적 많으며 김대중대통령 박정수(朴定洙)외교통상부장관을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만난 바 있다. 특유의 친화력과 조정능력으로 보아 하시모토(橋本)내각 이래 한일관계의 현상을 유지하는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부치내각은 국내경제 활성화의 실적을 가지고 다음 총선에 임해야 하는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 지지를 얻는데 악재(惡材)가 될 수 있는 한일간의 쟁점이 부각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를 테면 과거사 문제는 무라야마, 하시모토내각 이래의 수준을 유지하려 할 것이며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문화개방에 대한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자세를 기대할 것이다. 당면 현안인 한일어업협정은 대통령의 방일전에 타결을 보는 것이 순리다.

앞으로의 한일관계는 두나라의 국민적 이익을 상호 양해하는 바탕 위에서 정체상태에 있는 양국관계를 정상적인 궤도에 올리는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현안들은 가능한 한 외무 실무수준의 협상으로 타결하고 냉전시대의 구보수지배층 중심의 통로에만 의존하지 말고 젊은 세대와 야당정치인 재계 관료 학계 시민단체 등 다양한 대화통로를 열어나가야 한다.

오부치내각은 21세기를 향하는 일본정치의 과도적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며 금년중이나 내년 초로 예상되는 총선에서 자민당이 다시 뿌리를 내리든, 민주당 중심의 야당연합이 집권하든 일본정치가 가닥을 잡을 것이다. 그때의 중심세력과 머리를 맞대고 21세기 세계정치 내지 동북아질서 형성에 관한 진지한 대화가 오가길 기대해 본다.

최상용(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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