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구름모자 벗기 게임(7)

  • 입력 1998년 7월 26일 20시 33분


제1장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다⑦

마당에서 마을 아래의 못과 마을의 집들이 바싹 내려다보이고 겹쳐진 긴 계곡의 산자락들 너머로 계곡 바깥의 길과 그 너머의 마을이 아스라이 보였다. 그 먼 마을 뒷산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석양은 낡은 치마같이 물 빠진 오렌지빛이었다.

집을 처음 본 뒤로 2개월이 지난 어느날 서점을 계약하면서 집도 계약을 했다. 집은 도시의 끝 쪽 대학 앞 서점 자리에서 약 40분 거리였다. 그 동안 다섯 채의 집을 더 보고 다녔으나 이상하게도 그 집이 유독 마음에 맺혔다. 집 바로 뒤에 밤나무와 느티나무 숲을 가진 작은 동산도 마음에 들었고 집 앞의 전망도 마음에 꼭 들었다.

지금은 5백평의 땅 위에 덩그러니 집만 세워져 있지만 이사를 하면 마당에 잔디를 깔 것이다. 연못을 파고 금붕어도 풀고 그네도 맬 것이다. 그리고 흰색 벽돌이 차갑고 단조로와 보인다면 담쟁이 넝쿨을 심어서 부분적으로 푸르게 덮을 수도 있고 부엌 앞에 비닐 슬레이트 테라스를 만들어 야외 식탁을 놓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집 울타리는 낮은 목책을 두르고 우편함을 갖춘 소박한 대문도 만들 것이며 울타리가에는 작은 꽃들을 심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거슬리는 점이 있다면 세 식구가 살기엔 거실이 너무 크다는 점이었다. 거실과 부엌은 방들에 비해 너무 커서 휑뎅그렁했고 안방은 거실로부터 너무 돌아앉아 있었으며 불필요하게도 욕실이 두개나 되었다.

우리는 다음 해 5월에 이사를 했다. 미흔은 이사하는 일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거기에 그대로 있건 어딘가로 가건, 잠자는 여자에게는 어디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가 그 마을로 이사를 갔을 때, 마을은 집단 주술에 걸린 것처럼 하나의 소문에 휩싸여 있었다.

그들은 콩밭을 매거나 논에서 풀을 뽑아내면서 그 이야기를 하고, 버섯을 따거나 산에 염소를 묶으러 갈 때나 밭에서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점심밥을 먹으면서도 그 이야기를 했다.

장날 버스 정류장에서도 그 이야기를 했으며, 예식장에 가서도 그 이야기를 했다. 화원이나 목재소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도, 포도밭에 약을 칠 때도, 면사무소에서 서류를 땔 때도 그 이야기를 했고, 옻이 벌겋게 올라 보건소에서 주사를 맞을 때도 그 이야기를 했다. 농협에 돈을 빌리러 가서도, 파출소에서도, 학교의 어머니 회의에서도 버스를 놓쳐 계곡길을 걸어 들어올 때도 낯선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 줄 때도 그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마을에서 제법 떨어져 계곡길 한가운데 서 있는 외딴집을 지날 때는 아무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담장이 허물어져 살림살이가 내보이는 그 집앞을 지날 때 사람들은 무슨 괴질이라도 옮을까봐 두려워하는 듯이 입을 꼭 다물고 그것도 부족해 더러는 자신의 입을 손으로 가리기까지 했다.

소문들을 통해 내가 그 사건의 전모를 다 아는 데는 거의 한 달 정도가 걸렸다. 마을사람들은 타지에서 온 낯선 사람에게만은 수상쩍을 정도로 쉬쉬했다. 텃새나 따돌림 같은 것이기도 하고, 또 타지인의 눈앞에서는 그 마을의 집단적인 수치를 감추고 싶다는 맹목적인 배타의 감정이기도 했을 것이다.

<글: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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