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구름모자 벗기 게임(3)

  • 입력 1998년 7월 21일 19시 22분


제1장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다③

미흔은 매달 시어머니 앞으로 용돈과 함께 편지를 써 보냈던 여자였다. 야외로 소풍을 나갈 때면 네 가지 김밥을 쌌던 여자였다. 닭요리 전문가였으며 미싱을 사서 주방 장갑을 만들고 난 뒤, 곧 바로 아이와 나의 트렁크 팬티 만들기에 도전했던 여자였다. 꽃화분들을 잘 키웠고, 가구 위에 레이스를 짜 덮기를 좋아했다.

매주 도서관에서 두세 권씩의 시집과 소설책을 빌려 보았고 새로운 영화 보기도 좋아했다. 그리고 아들인 수와는 연애하는 연인들처럼 서로 사랑했었다. ‘난 절대로 아이를 떼어놓고 살 순 없을 거 같은데…… 물고기는 얼마나 물을 사랑하기에 장차 얼굴도 모를 알들을 낳아 물에 맡기고 떠나는 걸까, 물고기는 물을 얼마나 염려할까’라고 말했던 여자……

그런 미흔은 사라져 버렸다. 연기처럼? 안개가 훨훨 날아가듯? 갯벌에 숨어버린 게처럼? 싱크대 뒤로 잠입하는 바퀴벌레처럼? 하수관 속으로 꼬리를 감추는 쥐처럼? 넝쿨풀 속으로 사라지는 야생 고양이처럼? 겨울의 뱀처럼? 곰처럼? 모르겠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미흔은 사라졌지만, 동시에 무엇엔가 쫓겼다. 어쩌면 내가 쫓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녀의 피가 그런 쫓김을 원했던 것일까? 나는 단지 그녀의 운명속에서 솜씨없는 추적자의 역할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를 쫓을 동안은 모든 것이 분명해 보였으나 그녀를 놓쳐버린 지금에 와서는 그 모든 것이 너무나 혼란스럽다. 그녀를 붙들기 위해서는 그녀 자체가 아니라, 다른 표적을 맞추어야 했다는 느낌만이 언 뜻언뜻 스쳐간다. 그녀를 그렇게 조종해간 적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적은 여름날, 아직 밝은 저녁의 허공에 떠도는 거의 투명한 날벌레 떼처럼 잡을 수 없는 느낌일 뿐이다. 그러나 그 불분명한 느낌이 분명하게 나의 눈을 찌르며 부유한다. 나는 눈을 감아버릴 것인가? 손을 휘저어 쫓을 것인가?

아, 나는 정말 그렇게 하고 싶다. 이 부유하는 날벌레 속에서 그만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고 싶다. 그리고 피고름 같은 몇 방울 눈물을 짜내 버리고 그 여자를 잊고 싶다. 미흔, 몇 년 간 불러본 적도 없는 이름이, 지금 와서 담즙이 거꾸로 넘어오고 혈관이 떨리도록 다정하게 느껴진다.

그 이름은 지금 나를 진동시켜 살을 흔들고 뼈를 어긋나게 하고, 마침내 지진 같은 혼동에 빠뜨리고 있다. 나는 그 낯선 여자를 이해한다고 거짓 자백을 하고 싶다. 다른 남자와 통정한 여자, 그것도 맹렬한 욕망에 빠져서 제멋대로 놀아난 여자였지만 따지고 보면 나쁜 여자는 아니었다고 관대하게 말하고, 그 뒤로는 영원히 함구하고 싶다. 심지어 영문도 모르는 채 엄마를 잃은 아들을 위해 실은 그 여자가 모자랄 정도로 착한 여자였다고, 어디서든 불쌍한 꼴 당하지 않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나를 달래고 싶다.

그런데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것은 느닷없이 내 눈 속에 들어와 각막을 뜯어먹고 망막을 터뜨리려한다. 그리고 나는 눈을 감아버릴 수가 없다. 두 눈을 부릅뜨고 견딘다. 어쩌려는 것일까? 어떤 남자는 간통한 아내를 살해했다. 나도 그때 그랬어야 했던 것일까?

우리가 갑자기 시골로 이사를 한 이유는 우선은 미흔의 낮잠 때문이었다.

<글: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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