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월드컵의 한국투혼

  • 입력 1998년 6월 26일 20시 37분


축구나 농구처럼 몸싸움이 치열한 스포츠 경기에는 교묘한 반칙이 오간다. 심판의 눈을 피해 상대 선수를 팔꿈치로 치거나 유니폼을 잡아끌고 손으로 꼬집기도 한다. 심판에게 적발되지 않고 파울을 하는 것도 선수에게는 일종의 기술이다. 이런 행위는 파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흔들리게 만들기 위한 경우가 많다.

▼스포츠에는 의외로 심리적 변수가 크게 작용한다. 상대팀의 파울작전에 말려 흥분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 반대로 경기가 생각대로 술술 풀리면 실력 이상의 경기도 가능하다. 경기 당일 선수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를 갖도록 하는 것은 훌륭한 지도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팀의 부진은 심리전의 실패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5일 벨기에전에서 한국팀은 잘 싸웠다. 경기 초반 한 골을 먼저 내줬지만 이후 침착하게 대응해 동점을 만들 수 있었다. 경기내용에서는 벨기에에 앞선 느낌이었다. 특히 수비 선수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은 놀라웠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서도 과감한 헤딩으로 상대방 볼을 걷어냈고 다리에 경련을 일으킨 선수는 잠시 치료를 받고 돌아와 다시 몸을 던졌다.

▼며칠 전 네덜란드전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진작 이처럼 후회없는 경기를 벌였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하지만 이는 결과론에 불과하다. 첫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은 16강 진출을 위해 꼭 이겨야 한다는 중압감에 무너졌고 두번째 경기에서는 첫 패배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마지막 경기는 탈락이 확정된 상태에서 1승을 목표로 분발한 것이 좋은 경기내용으로 이어진 듯하다. 월드컵은 계속된다. 재도전을 위해 이번 패배를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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