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이철수/민노총은 노사정委 참여하라

  • 입력 1998년 6월 3일 19시 43분


제2기 노사정위원회가 천신만고 끝에 출범했다. 한국노총은 참여의 뜻을 밝혔지만 민주노총은 여전히 내부의견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작금의 상황을 살펴보면 노동계의 불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대량 실업이 장기화할 전망이고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산업현장에서 노동계의 주장이 묵살되기 일쑤다. 주주 중심의 기업지배와 노동의 유연성을 추구하는 미국식의 자유시장경제가 탈이념시대에 최후의 승자인 양 전세계에 파급되고 있다.

그 여파로 우리나라에서도 해고를 자유로이 해야 실업률이 떨어진다는 이른바 ‘해고의 역설’이 여과없이 전달되기도 한다. 시장 실패의 주범인 재벌체제의 개혁도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문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용안정과 생존권 보장, 실업자 대책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정경유착의 근절과 재벌해체 등을 줄곧 요구해 왔고 필자도 이러한 주장에 상당 부분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불참하고 정부의 대응 여하에 따라서는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을 고집하는 주된 이유가 정리해고법제의 철폐에 있다는 데에 있다.

고용안정은 합리적인 법해석과 운용만으로 풀릴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총체적인 경제여건과 관련된 문제다. 현재의 위기구조는 실타래처럼 구조적으로 얽혀 있고 그 처방책도 복합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화를 거부한 채 단선적인 실력행사로 치닫는 행위는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위기의 급박성에 비추어 파업은 공멸을 의미한다.

노사정의 삼각구도에 참여하여 자본의 전횡을 방지하고 사회적 세력간의 견제와 균형을 유지시키는 일은 어쩌면 노동계의 시대적 책무라고까지 할 수 있다. 위원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대승적인 자세로 대화에 임해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조합원들의 정서에만 따를 것이 아니라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때로는 조합원을 설득하고 견인해 내는 리더십을 발휘하여야 할 것이다.

사실 제1기 노사정위원회의 합의내용을 보면 노동계가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리해고법제만 하더라도 인수 합병에 관한 규정 외에는 정리해고에 대해 보다 규제가 강화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조직 내부의 선명성 경쟁으로 인해 공개적인 대화의 장(場)을 거부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간곡히 바란다. 노동계의 정치력을 실험하는데 이만큼 효과적인 기회가 있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보편적 가치와 정의 관념이 무시될 때만 이 판을 깰 수 있다. 현재의 상황을 그렇게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이철수<이화여대교수·노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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