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구본호/금융구조개혁 실천 나설 때

  • 입력 1998년 6월 2일 19시 54분


매일 매일 기업의 부도가 늘어나고 실업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금융권의 부실채권은 눈덩이처럼 늘어만 가고 있다. 모두가 구조조정을 빨리 서둘러야 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막상 자신의 문제가 되면 왜 나부터냐고 반발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구조조정을 솔선수범해야 하지만 정부개혁은 공무원의 복지부동 타성으로 이미 용두사미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정치개혁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구태의연하고 무책임한 인기주의 경쟁과 당리당략에 의해 실종되고 있다. 민노총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파업하는가 하면 공기업 노조는 민영화와 고용조정에 반대하는 조직적인 저항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 부분적 도태 감수해야

기업의 구조조정도 막연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창의적 직언을 하지 못하는 기업문화 속에 임원들은 총수 눈치만 보고 있고 총수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다가는 ‘대한민국호’라는 배가 험난한 국제경쟁의 조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좌초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다. 또 우물쭈물하는 사이 외국자본이 철수하게 되면 제2환란의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노동계와 기업은 물론 금융계의 과감한 구조조정이 빠른 시일내에 추진되어야 한다.

지금의 경제난국은 근원적으로 부채 누적과 경쟁력 상실에서 비롯되었기에 우리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부분적 도태와 전면적 공멸(共滅)사이에서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만 한다. 정리해고가 아니면 기업도산으로 전원 실업일 수밖에 없으며 한계기업이 퇴거되지 않으면 전산업이 멍들어 마침내 공멸의 길에 들어서게 됨을 인지해야 한다.

대량실업으로 인한 사회불안을 두려워한 나머지 정부가 기업지원을 거듭해온 구소련(USSR)은 마침내 망했으며 부실한 공기업의 민영화와 노동법의 개정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회복한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건강한 경제로 회생했다.

부실채권으로 멍든 1천1백15개의 저축 금융조합(S & L Association)을 단기간에 정부재정으로 정리한 미국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금융산업을 구축했는가 하면 일본은 부실금융기관을 정리함에 있어서 재정지원 반대에 봉착하여 점진적 방법을 택해온 결과 부실 발생 이후 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부실채권 정리가 부진해 장기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교훈삼아 우리도 경제난국 극복을 위해서는 미국이나 북유럽 3국(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처럼 과감한 재정자금 지원을 통해 금융부실을 조기에 해소해야 한다.

정부가 최근 제6차 경제대책조정회의를 통해 50조원 규모의 공공자금을 투입한다는 금융구조개혁 대책을 발표한 것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은 있지만 그래도 다행한 일이다. 재정자금이 많이 들더라도 초기에 금융부실을 신속하게 해결한 경우에는 금융시스템이 조기에 안정되고 부담금도 최소화한 반면 재정지원을 꺼리고 점진적인 방법을 택한 경우에는 오히려 국민 부담이 시간이 갈수록 가중되고 경제회복도 지연됐다는 여러 나라의 경험을 교훈삼아야 한다. 특히 지금과 같이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의 침체로 증자나 자구노력에 의한 자금조달이 어렵고 외자도입도 용이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금융구조조정 재원을 금융기관이 담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재정지원 국민 설득을

그러나 이같은 방대한 재정부담을 감내하기 위해서는 국민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후속 보완조치도 있어야 한다. 금융기관의 임직원은 부실경영에 대해 책임을 지고 주주도 적정한 손실분담을 해야 하며 또한 금융부실 원인을 제공한 기업은 부실기업정리는 물론 상당한 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적 개선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

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은 국민적 공감대를 다질 수 있는 개혁 입법을 통해 금융구조개혁 실천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구본호(울산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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