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선거법 합의 백지화라니…

  • 입력 1998년 4월 16일 20시 29분


여야의 지방선거관련법 개정 협상은 끝내 어디로 굴러가려 하는가. 여야는 중앙선관위가 당초 통보한 협상시한 15일까지도 미합의 쟁점 3개항을 타결하지 못했다. 그러자 거대야당인 한나라당은 그동안의 협상에서 이미 합의된 사항도 백지화하기로 의원총회에서 결정, 25개 합의사항마저 자칫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협상이 조속히 타개되지 못하면 6월4일 지방선거 관리에 차질이 빚어지거나 현행법으로 선거를 치러야 할 판이다.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협상 막바지에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추가로 탈당하고 검찰이 종금사 인허가의혹 수사를 본격화해 한나라당을 자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야 원내총무회담은 합의사항만이라도 분리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고 한나라당 총재단회의도 이를 추인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의원총회는 강경파 초 재선 의원들의 주도에 휘말려 기존 합의사항도, 분리처리 방식도 거부하기로 했다. 협상의 기본원칙을 훼손한 처사다. 그렇게 번번이 당내에서 뒤집을 바에야 총무회담은 뭣하러 하는가.

합의사항 가운데는 광역의회 의원정수를 30%, 기초의회 의원정수를 24% 감축하는 등 지방자치와 선거의 고비용 요인을 개선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연합공천, 구청장 한시적 임명제, 기초자치단체장 정당공천 문제같은 미타결 쟁점과는 별개로 중요한 것들이다. 미합의 쟁점 3개항 때문에 이미 합의된 25개항을 볼모로 잡아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식으로 나오는 것은 가당치 않다.

선관위는 최대한 늦춰잡아 18일이나 20일까지라도 선거법이 처리되면 새 법으로 지방선거를 치를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여야는 기존 합의사항을 그대로 인정하고 남은 쟁점에 대해 2,3일 동안 최선을 다해 협상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도 안되면 합의사항만 분리처리하고 미타결 쟁점은 다음 기회에 재론하기 바란다. 그 과정에서 여야 영수회담을 열어 여러 현안을 한꺼번에 논의하고 푸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쟁점의 상당부분을 어렵게 합의해 놓고도 지방선거를 현행법으로 치를 수는 없다.

협상이 늘 이렇게 꼬이는 근본요인은 한나라당 집행부의 지도력 결핍과 여권의 정치운영 미숙에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당을 잘 수습해 거대야당에 걸맞은 면모를 하루속히 갖춰야 한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선거법 표결처리를 주장하지만 그것은 안될 말이다. 선거의 규칙인 선거법을 표결처리하면 승복의 문제 등 엉뚱한 부작용을 낳기 쉽다. 그래서 선거법은 어렵더라도 합의처리하는 것이 관례다. 여권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피해의식과 경계심이 왜 생기는지를 살피고 정국을 좀더 정교하게 운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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