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미스터 커티」,『여자라고 깔보지 말라』

  • 입력 1998년 4월 13일 09시 09분


“저 남자가 누구지?”

눈치빠른 독자는 알아차렸을 게다. 중후하게 늙은 말론 브랜도를 연상케 하는 미스터 커티는 다름아닌 우피 골드버그의 남장(男裝).

영화 ‘미스터 커티’에서 실력은 짱짱하지만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던 골드버그는 궁리 끝에 미스터 커티라는 가공인물을 내세워 미국 증권가의 거물로 떠오른다.

그러나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미스터 커티를 공개하라는 여론의 성화 때문에 할 수 없이 남장차림으로 나서게 되는 것.

이 장면의 촬영을 위해 골드버그는 두꺼운 라텍스 마스크를 얼굴에 덮어쓰고 일곱겹의 화장을 해야 했는데 사람들이 코 앞에 있는 골드버그를 못알아봤을 정도였다고.

여장 남자 또는 남장 여자가 나오는 영화를 드래그 무비(Drag Movie)라고 한다. 이 영화가 전하는 것은 우스꽝스런 분장에서 나오는 재미만이 아니다. ‘여자라고, 또는 남자라고 못할게 뭐 있느냐’는 식의 사회에 대한 삿대질, 말하자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성차별과 사회적 모순을 꼬집어내 비판한다. 더스틴 호프먼이 여장을 했던 ‘투시’나 로빈 윌리엄스의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그 예.

‘미스터 커티’에서 미스터 커티는 서구 이데올로기로 치면 ‘정상’인 백인, 남성, 상층계급을 대변한다. 반대로 골드버그는 흑인이고 여성이며 스크린 속에서는 하층계급이다. 즉 ‘비정상’인 셈. 영화 마지막에 골드버그가 미스터 커티의 ‘껍질’을 벗겨내는 장면은 통쾌하기 짝이 없는 이데올로기의 반전이다.

처녀여서 또 먹여 살려줄 남편이 있는 기혼녀여서 정리해고 0순위에 오를 때, 여자보다 못한 남자후배가 먼저 승진할 때, 여자라는 이유로 중요한 업무 대신 잡일만 주어질 때 ‘미스터 커티’는 기억할 만한 영화다. 그대로 따라하기는 좀 어렵겠지만.

〈김순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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