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떠오르는 정계 개편

  • 입력 1998년 3월 28일 20시 28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현재로선’ 인위적 정계개편 계획이 없다고 거듭 천명했는데도 일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탈당계획 또는 이탈 움직임에 따라 정계개편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여권은 이들의 이탈을 ‘자의에 의한 것’이라며 여권 합류를 막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는 거의 노골적으로 정계개편 의사를 내보였다. 한나라당은 ‘야당파괴 공작’이라고 반발하며 강력대응 방침을 밝혔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동요가 ‘자의’인지 ‘공작’의 결과인지를 판단할 명백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오늘의 사태는 한나라당의 자업자득이라고 볼 만한 측면이 있다. 국무총리 인준과정 등에서 한나라당은 일부 초재선의원들에게 끌려다니며 의원 개개인의 자유의사와 관계없이 대여(對與)강경노선으로 치달았다. 그 결과 국정표류의 일인(一因)을 제공했고 다수 국민이 정계개편 필요성에 공감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한나라당은 당권을 둘러싼 내분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여러 갈래의 당내 이질세력들이 아직도 융화되지 못하고 있다. 의원들의 동요를 막으려면 한나라당은 내부를 조속히 정비하고 새로운 정체성(正體性)을 확립해야 한다.

정치인들에게는 정당선택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기존 당적으로 선거에서 당선한 국회의원이 유권자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임기중에 당적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민의에 대한 배신이다. 더구나 정당의 정책노선보다는 특정인과의 친분, 지역정서, 심지어 사업상의 이유나 개인적 약점 때문에 정당을 옮겨다니는 것은 정당정치 발전을 가로막는, 비난받아 마땅한 처사다. 특히 정권교체기마다 정치인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이합집산을 되풀이하는 작태는 청산돼야 할 구태(舊態)임에 틀림없다.

그동안 거대야당에 줄곧 발목을 잡혀온 여권으로서는 ‘의원 늘리기’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여권은 약점을 가진 정치인이나 ‘철새’, 혹은 기회주의자들까지 무차별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정치적 도덕적으로 어떤 손익을 가져올지 깊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외부인사 영입경쟁이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연립정권에 갈등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북풍(北風)파문이 얼마간 가라앉으면서 모처럼 소강상태에 들어간 정국이 정계개편 공방으로 다시 대치조짐을 보이는 것은 유감이다. 정국경색이 제반 분야의 개혁을 방해하고 경제회복을 늦추게 한다면 그보다 더한 낭패도 없다. 그에 따를 정치적 부담은 결국 여권에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야당이란 세력이 약해질수록 오히려 강경해지기도 한다는 것이 우리 의정사의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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