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재홍/설득하는 대통령

  • 입력 1998년 3월 9일 19시 49분


새 정부의 차관급 인선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상은 안기부 차장들이었다. 선거 이전부터 김대중(金大中)후보진영에서 일한 신건(辛建)1차장이나 나종일(羅鍾一)2차장은 그의 핵심 정책브레인들이다. 게다가 안기부의 예산과 조직을 주무르는 기조실장엔 김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강래(李康來)씨가 임명됐다.

이들의 중량감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주목하고 있다. 신1차장은 유력한 법무장관 후보였고 나2차장은 일찍부터 청와대의 핵심 수석비서관 물망에 올랐었다. 국민회의 부총재였으며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맡았던 이종찬안기부장까지 생각하면 안기부는 김대통령 직계부대의 아성으로 부상한 느낌이다. 김대통령이 이렇게 무게있는 측근들을 안기부에 포진시킨 배경을 강력한 친정(親政)체제 구축의지로 읽는 것이 중론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국가정보기관은 국정최고책임자에게 종합적인 조언자 역할을 한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나 영국의 내각종합정보국(MI5,MI6), 일본의 내각조사실 등이 다 마찬가지다. 국정책임자는 이런 정보기관을 통해 모든 분야의 직접관장이 가능해진다. 즉 민주국가에서 중앙집권적 친정체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이 정보기관이다.

그러잖아도 김대통령은 경제대책조정회의를 신설하고 그 의장이 돼 경제를 직접 챙길 방침이라고 한다. 경제정책의 사령탑을 대통령이 맡겠다는 의지다. 또 헌법상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상설화하며 대북정책도 직접 지휘하겠다고 했다.

거기에다 정당과 국회를 보아도 여당인 국민회의 총재를 겸하고 있는 김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하는 구도다. 현장에서 국민회의를 이끌고 있는 리더는 조세형(趙世衡)총재권한대행에다 한화갑(韓和甲)총무대행이다. 모두 대행일 뿐 여야관계에서 재량권을 갖고 임하기 어려운 위상들이다.

이렇게 되면 경제 외교안보 정당정치 등 거의 모든 분야가 김대통령의 친정체제 아래 들어간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 뉴욕타임스는 특집기사에서 김대통령이 경계해야 할 리더십 스타일의 약점 두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바로 친정체제의 문제점인 ‘미시적(微視的) 관리자상’이다. 대통령이 시시콜콜한 간섭을 하다보면 큰 방향을 잃는다는 경고다. 둘째로는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가 지적됐다. 헌법상 요건인 국회동의를 못받은 총리후보를 여론조사 지지를 내세우며 서리로 밀어 붙이는 무리수가 그런 예일 것이다.

여론조사에 따른 포퓰리즘은 지난해 12·18대통령선거의 부산물이기도 하다.

헌법규정을 보면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이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인준을 받는다”는 것과는 다르다. 현행 헌법조문에서 총리서리란 이름은 찾아 볼 수 없다.

김대통령의 철학이 담긴 정치노선이라면 단연 ‘민주적 시장경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아무리 급해도 비민주적 개발독재 같은 것으로 경제를 도모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민주정치의 분권화(分權化)에 걸맞지 않은 친정체제로 어떻게 국난에 대처할지 궁금하다. 분야별 리더십을 키우지 않으면 그만큼 국민지지는 취약해진다.

대통령은 오직 설득할 권한만을 가질 뿐이라는 미국의 권위있는 대통령학 이론가 리처드 노이스타트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는 트루먼 대통령의 경구를 이렇게 인용하고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설득하지 않아도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그들이 스스로 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이란 바로 설득하는 권한이다.”

김재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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