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오해석/대학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 입력 1998년 3월 3일 20시 15분


지난해 말,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곳이 두 군데 있었다. 은행과 대학이다. 그러나 이제 한 곳으로 줄었다. 은행은 좋은 시절의 향수는커녕 벼랑끝에 서서 살아남기 전략에 목숨을 건 최악의 지경에 이르렀음은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 『IMF사태는 대학탓』

이제 남은 것은 대학이다. 그러나 아직 위기를 위기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곳 또한 대학이다. 지난해 외환위기를 직시하지 못했던 정책당국처럼 빨간불이 켜진 대학의 위기를 대학 스스로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의과대학의 고가장비를 차관으로 대량 구입한 대학이나 대규모 건설공사를 벌인 몇몇 대학이 환차손과 고물가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 이외에 그야말로 국제통화기금(IMF)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는 곳이 바로 대학이다. 대학경영의 총대를 메고 있는 총장을 비롯한 책임있는 극소수의 교수이외에 대다수 교직원들은 설마설마로 국가적 대란을 간과하고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 우리 대학마저 부도나 폐교라는 최악의 사태를 당하기 전에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설 때다.

이번의 위기를 대학 개혁의 기회로 살리지 못하고 실기(失機)하면 어쩌면 두번 다시 우리 대학이 세계적 대학으로 성장하여 명실공히 세계속의 대학이 되고자 하는 꿈은 영원히 희망사항으로 남게될 것이다.위기는 곧 기회라는 교훈을 다시한번 되새기며 우리 대학이 해야할 과제 세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대학도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자. 대한민국 건국이래 망하여 문을 닫아보지 않은 두 곳은 은행과 대학이다. 이제 은행이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목격할 날이 눈앞에 있다. 같은 모양으로 대학도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대학의 교직원들은 인식해야 한다. 문어발식 학과와 백화점식 강의로 재벌대학(?)이 된 비대한 대학 몸집의 거품을 빼는 구조조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둘째, 대학에도 상품과 고객이 있으며 고품질의 상품을 공급하여 고객만족 내지 고객감동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교수 입장에서의 상품은 강의와 연구결과이고 이 상품의 품질고하에 따라 고객인 학생들의 만족과 감동이 결정된다. 대학의 입장에서 상품은 학생이고 고객은 졸업할 학생들의 취업터인 사회이다. 졸업생들의 학문적 인격적 품질의 고하에 따라 고객인 기업 기관 등의 만족도가 결정된다. 연구업적 평가와 강의 평가의 결과를 토대로 한 교직원 연봉제가 실시되어야 한다.

셋째, 대학이 사회발전의 견인차가 되어야 한다. 요즘 대학이 뭘 가르치고 있느냐하는 불만을 자주 듣는다. 그야말로 대학이 사회의 요구사항을 절대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의 증명이다. 소위 고학력의 대명사인 박사학위 소지자 75%이상이 속해 있는 대학이 사회의 발전 방향을 예측하기는 커녕 튀는 방향조차도 감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남들이 땀흘려 일구어 놓은 기업체에 제자들을 취직시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벤처기업 창업교육, 인성교육, 미래의 지도자 교육 등 그야말로 10년후에 사회의 중추적 인물이 되어 이 사회를 이끌어 갈 차세대 지도자는 대학에서 만들어진다. 오늘의 이 몰골을 만든 정치가 행정가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대학의 책임이 있다.

▼ 「高품질 교육」에 앞장서야

대학 교육이 바로 서면 사회는 바로 서게 된다. IMF사태는 대학의 탓이라 자성하자. 이제 우리 대학도 이 국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민주화 과정에서 보여준 학생운동의 사례와 같이 교수들이 교수운동이라는 기치를 걸고 선봉장이 되어야 할 때가 됐다. 대학이 망하면 나라도 망한다. 대학이 살아야 나라도 산다.

오해석(숭실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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