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서울한가람교⑧]학생 재능-특성따라 교과선택

  • 입력 1998년 3월 2일 08시 10분


“여러분, 요즘 아빠들이 실직불안에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이 많지요. 그래서 오늘은 고개숙인 아빠들의 기를 팍팍 살려주는 ‘카나페’ 술안주를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봄방학을 며칠 앞둔 2월16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한가람고 가사실습실. 취미클럽인 ‘식도락반’의 요리시간이다.

이 클럽은 매주 요리 모임을 갖고 있다. 음식에 일가견이 있다는 학생 30여명이 회원. 이옥식(李玉植·41·여)교장은 회원이자 지도교사.

이날 모인 회원 14명은 가정교사의 설명이 끝나기가 바쁘게 잽싼 손놀림으로 특별메뉴를 만들기 시작했다.

“요리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부터 먼저 하는 것이 효과적이에요. 그러니까 먼저 메추리알을 삶아요.”

학생들은 비스킷 햄 치즈 키위 메추리알 체리토마토 마요네즈 버터 등의 재료를 작업대에 올려 놓고 카나페를 만들어갔다.

요리를 취미로 하는 클럽이지만 회원의 절반이 남학생이다. 여학생과 똑같이 앞치마를 두르고도 조금도 어색한 구석이 없다. 키위를 깎는 손놀림도 능숙했다.

카나페를 만들 때는 색의 조화를 맞추는 것이 키포인트. 비스킷 위에 치즈 햄 키위를 올려놓고 이쑤시개를 꽂아 고정시킨 뒤 딸기와 체리토마토로 모양을 냈다.

어느새 큰 접시 5개 분량의 카나페가 만들어졌다. 남학생들은 군침이 도는지 여학생들의 눈을 피해 슬쩍 입에 넣다 들켜 꿀밤을 맞기도 했다.

회장 최종원군(17)은 “요즘은 남자가 가사를 분담할 필요도 있고 어려서부터 음식 만드는게 재미있어 모임을 만들었다”며 “집에서도 요리를 하면 부모님이 기특해 하신다”고 말했다.

이 학교의 특별활동은 왕성하다. 연극반 수화반 사진반 보컬밴드반 영화감상반 만화창작반 대중가요반 풍물반 수영반 등 무려 23개의 취미클럽이 활동중이다. 회원 10명을 모은 뒤 지도교사를 초빙하면 클럽이 탄생된다.

한가람고는 일반교이지만 인문계와 실업계 예체능계 교육과정을 두루 합친 독특한 운영방식 때문에 ‘교육과정 통합운영학교’로 불린다.

영등포여상과 같은 재단 소속인 이 학교는 학생들의 재능이나 특성을 무시한 채 대학입시 준비를 강요당하는 일반학교의 폐단을 고쳐 자율성과 창의성 교육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97년 6학급으로 첫 출발했다.

한 학교에 인문 실업 예체능계 교육과정을 모두 개설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취미에 따라 교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수준이 비슷한 학생들을 모아 수업함으로써 학습효과가 훨씬 높다는 것이 학교측의 설명.

어학 사회 자연과학Ⅰ 자연과학Ⅱ 미술 음악 컴퓨터 등 7개 전공영역을 묶어서 전공에 필요한 교육과정에 따라 이수하면 된다. 펜티엄급 컴퓨터 1백10대를 갖추고 국내 최초로 컴퓨터교과를 신설한 것도 이 학교의 가장 큰 자랑. 외국인 교사 4명이 영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를 회화중심으로 가르치고 있다.

올해부터는 ‘지역연구’과목을 신설해 자신이 선택한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에 대해 1년간 자료를 스스로 수집하고 연구할 계획이다.

수업은 과목별 이동수업이 기본원칙. 정해진 교실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시간표에 따라 해당 과목의 교실로 찾아간다. 2,3학년부터는 교과목에 따라 학년구분도 없이 공부할 수 있다.

학생들은 등교하면 복도에 마련된 개인사물함에 교과서 등을 보관해 둔다. 담임교사가 가르치는 과목의 교실이 학급교실이 된다. 담임교사와는 아침조회 점심시간 종례시간에만 만난다.

수업도 한시간이 50분이 아니라 1백분이 기본이다. 선생님이 혼자 설명하고 학생은 받아쓰는 일방통행식 수업이 아니다.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 토론과 발표를 해야한다. 토론과정을 학생들이 직접 비디오로 촬영한 뒤 토론매너 등을 배우는 자료로도 활용한다.

김선화양(17)은 “독특한 운영방식 때문에 한가람에서는 잠잘 시간이 없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라며 “그러나 좋아하는 과정을 스스로 선택하기 때문에 1백분 수업이 어느새 지나가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가람고의 또다른 특징은 매머드 학생회의. 보통 학생회가 반장들의 모임으로 끝나지만 이곳에서는 전교생 3백12명이 매달 한번 강당에 모여 주제를 놓고 진지한 토론을 벌인다. 한가람고 문의는 02―602―0794.

〈이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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