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강황석/어느 실직가장의 눈물

  • 입력 1998년 2월 25일 19시 56분


새 정부가 넘겨받은 과제가 한없이 벅차다. 분유 한 통을 훔친 어느 부부의 눈물겨운 사연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앞으로 5년간 감당해야 할 시련을 상징적으로 예고하고 있다. 그 젊은 부부는 아기가 배고파 우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다고 울먹였다. 막다른 상황에 몰리고 있는 민생의 한 단면이다. 김대통령이 어제 취임사 도중 잠시 눈시울을 적시던 모습이 마음속에 겹친다. 그러나 그 시련은 이제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외국의 한 컨설팅회사는 국제통화기금(IMF) 돈을 먼저 받았던 나라들의 경험분석을 바탕으로 IMF위기의 가장 고통스러운 고비는 1단계 유동성위기를 넘긴 뒤 이어지는 2단계 경기침체기라고 경고한다. 총체적 금융위기 속에 대형 금융기관과 대기업의 연쇄부도가 일어나는 이 시기에 본격적인 대량실업이 병행된다는 예측이다. 그 시기는 짧아도 6개월, 길면 1년반까지 계속되며 이 위기를 넘긴다 해도 한국경제가 성장력과 고용흡수력을 회복한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을 덧붙이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겨우 1단계 위기를 지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이미 우리의 실업문제는 심각하다. 하루 구직자 수가 5천명을 넘었지만 나오는 일자리는 그 10분의 1 수준이다. 2단계 위기로 대량실업이 이어지고 정리해고가 본격적으로 병행되면 얼마나 더 많은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을지 두려운 상황이다. 연구기관에 따라 올해 실업자 수는 1백만명 또는 1백20만명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군 입대나 대학원 진학 등으로 취업을 피하고 있는 사실상의 청년실업자를 계산에 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성 잠재실업자나 한계소득의 자영업자를 포함하지 않은 숫자다. 게다가 우리의 고용은 구조적으로 변하고 있다. 무엇보다 평생직장시대가 끝나고 있다. 정리해고제 도입으로 기업들은 경기상황에 따라 고용수준을 수시로 조절하게 될 것이다. IMF체제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은 기술집약과 자본집약형으로 생산체제를 바꾸게 될 것이다. 그에 따른 인력감축이 불가피하고 근로자파견제 도입과여성의노동시장진출 등으로 임시고용은 더욱 상시화될 것이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IMF체제를 거친 뒤의 성장력 예측이나 이같은 고용구조 변화추세를 감안할 때 고용에 관한 한 IMF위기 이전 상태의 회복은 불가능해 보인다. 거기에 근로계층의 절망이 있고 정부 역할의 한계와 고충이 있다. 그러나 저성장 고실업시대는 이미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고용의 안정성과 기반 확충은 물론 중요하지만 실업기의 충격과 한계상황을 완화하는 쪽으로 노동정책과 복지정책의 역점을 옮길 시기가 왔다. 새 정부가 노사정합의로 고용안정기금을 크게 증액하고 실업급여의 대상과 기간을 늘린 것은 큰 진전이다. 복지정책 차원에서 고용보험제도의 확충이 계속되어야 한다. 그와 관련해 재정의 탄력적 운용문제를 IMF와 적극 협의하는 일이 급하다. 불황기일수록 재정투자를 확대해 총수요를 창출하고 그 기폭력으로 불황탈출을 앞당기는 정책은 요긴하다. IMF실업은 장기화될 것이다. 실직자들이 한계를 견뎌낼 수 있도록 저리융자의 길을 넓히는 문제도 연구해야 한다. 김대통령은 소외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한숨짓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따뜻한 마음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다. 강황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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