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희망을 여는 대통령으로

  • 입력 1998년 2월 24일 19시 51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시대가 열렸다. 건국 50년만에 선거를 통한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가 평화적으로 성취됐다. 이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김대중대통령시대 개막의 의미는 크다.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숱한 시련과 굴절의 역정(歷程)을 끝내고 마침내 ‘절차적 수준’에서 완성의 봉화(烽火)를 올린 것이다. 오늘 김대중 제15대 대통령 취임은 그런 뜻에서 ‘20세기 말한국헌정사의 승리’라고 기록할 만하다.

그러나 감격과 희망으로 맞아야 할 김대중대통령시대는 김대통령이 헤쳐온 개인사(個人史)의 굴곡만큼이나 험난하고 고통에 찬 시대가 될 것임을 생생히 예고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간 국가경제는 여전히 위기에서 맴돌고 있고 그 위기의 실상은 불황 도산 실업 물가 등 경제 각 부문에 즉각적이고 엄청난 파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대통령은 이미 당선 당일부터 2개월 남짓 당선자 신분으로서 이 위기와 맞서왔다.

▼ 경제회생이 최우선 ▼

김대통령이 21세기의 새로운 천년을 여는 대통령으로서 해내야 할 일은 많다. 그가 대통령 당선 첫 기자회견에서 이미 밝혔듯이 신뢰받는 정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 갈등과 차별없는 사회, 문화선진국,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 등은 우리나라가 21세기 세계 무한경쟁의 바다를 헤쳐나가기 위해서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과제들이다. 김대통령은 이를 5대 국정지표로 정리했다. 그중 가장 시급히 풀어야 할 최우선 과제가 경제회생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김대통령의 모든 개인적 역량과 그의 시대의 국가적 역량은 6.25 최대 국난(國難)인 IMF체제 극복에 집중돼야 한다. 이것이 성공할 때 그는 역사와 현실에서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그렇지 못할 때 또 한번의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김대통령에게 주어진 숙명이 아닐 수 없다. 그가 국가를 수렁에서 건져 올리는 마지막 선택에서 실패할 경우 우리의 희망도 영영 꺼져버릴 수 있다.

김대통령의 취임 전 두달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숨가쁜 외교와 개혁의 나날이었다. 그 성과는 일단 긍정적이다. 외환위기의 큰 고비는 넘겼고 노사정(勞使政) 대타협으로 기업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 대대적인 정부기구 개편과 관료조직 개혁에도 착수했다. 김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개혁에 여야 정치인들의 초당적 협조와 국민의 협력을 요청했다.

그러나 퇴임한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도 말했듯이 개혁은 혁명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김대통령도 지난 2개월 동안 기득권층의 벽이 얼마나 두꺼운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고백했다. 개혁이 시작되면서 기득세력과 고통에 내몰린 근로자들이 저항과 반발의 몸짓을 드러냈다. IMF체제 초기의 ‘다시 뛰자’는 국민적 반성과 사회적 긴장도 많이 해이해졌다. 김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이 예상돼온 도전에 맞서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이제 김대통령의 정치력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문제는 그의 설득력과 추진력이다. 임기 5년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다. 이 주어진 시간 안에 그는 위기에 처한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국민의 자발적 희생과 동참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것은 국가 최고경영자로서의 투철한 현실인식과 탁월한 전략적 리더십 없이는 안된다.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이며 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김대통령은 쉽고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김대통령은 너무 많은 것을 이루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추상적인 나열식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국정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국민적 역량을 효율적으로 동원해야 한다.

개혁은 결코 빠르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바른’ 개혁이어야 한다. 개혁 이후 국민의 삶이 어떤 모습일지를 제시하지 못할 때 국민은 개혁에 동참하기를 주저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대통령의 민주적 시장경제론과 대외개방정책은 보다 정교한 비전과 프로그램으로 제시될 필요가 있다.

김대통령이 처한 정치적 환경은 그리 행복하지 않다. 정권 자체가 보수세력과의 연합정권인데다 개혁의 제도화를 이끌 국회는 거대야당이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시대가 요구하는 개혁의 원칙과 일관성을 훼손할 여지를 남긴다. 그러한 조짐은 이미 눈에 띄고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대통령의 독선과 대통령 자신이 모든 국가적 과제를 혼자서 결정하는 미시적 국가경영을 허용하는 구실이 될 수 없다. 이 또한 김대통령에게 주어진 정치력의 시험이 될 것이다.

▼ 항상 귀 열어놓아야 ▼

인기 뒤에는 항상 추락이 도사리고 있다. 오늘 취임하는 김대통령은 지금 80% 이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이런저런 실망의 소리도 들린다. 김대통령은 이 불만의 소리에 항상 귀를 열어놓아야 한다. 겸손은 언제나 미덕이다.

김대통령의 역사적 소임은 분명하다. 국민적 화합 위에서 나라를 뒤덮고 있는 불안과 고통의 암울한 먹구름을 걷어내고 국가의 장래를 위한 도약과 희망의 문을 열어야 한다. 이것이 성공하지 못할 때 나라의 경제뿐 아니라 민주주의마저 파산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경고에 김대통령은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