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물관 지방이관 이르다

  • 입력 1998년 2월 20일 19시 42분


정부조직개편심의위가 최근 발표한 부처 직제개편안 중 ‘국립지방박물관 관리를 지방자치단체에 이관한다’는 내용을 놓고 찬반론이 엇갈리고 있다. 긍정론은 지방에 위치한 시설의 지방자치단체 관할은 지방화시대에 피할 수 없는 추세라는 논리다. 어느 부처에서나 싫어하는 중앙정부 직제의 지방이관을 시행하면서 좌고우면(左顧右眄)하다보면 저마다 사정이 있어 작은 정부 실현은 ‘물건너 간다’는 주장도 곁들인다. 이에 대해 문화계에서는 장기적으로 지방이관은 합리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시기상조라는 반박이다. 한국역사학회와 한국박물관협회 등 12개 학회 단체는 정개위의 개편안에 반대하는 장문의 성명서를 내놓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9개의 국립 지방박물관과 27개의 공립박물관이 있으며 대학과 민간이 운영하는 곳을 합하면 2백19개의 박물관이 있다. 그러나 시립 등 공립박물관은 전문인력과 예산부족으로 대부분 전시 교육 등 제기능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지자체일수록 경부고속철의 경주구간 유치 논란에서 보듯 개발사업에 치중해 문화재보호 등은 소외되거나 무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박물관이 지자체에 이관될 경우 야기될 더 심각한 문제는 박물관 운영의 핵심인 유능한 학예전문직의 확보가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 지방의 9개 국립박물관은 중앙박물관과의 정기적인 인사교류를 통해 유물의 전시 보존 연구면에서 서울과 평준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지방으로 이관될 경우 인사교류의 길이 막혀 수준높은 전시 운영 발굴은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열악한 지방재정자립도에 비춰볼 때 현재보다 박물관 운영이 영세해질 것이 분명해 학예전문직의 이직이나 퇴직으로 인한 운영공백도 우려된다. 유물의 전시나 보관도 법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모든 국립박물관 소유문화재는 국가 소유여서 지자체가 운영하는 지방박물관에 양여할 수 없고 양적으로도 너무 많아 중앙박물관 단독으로 보관할 수도 없다. 이같은 여러 문제점들을 고려할 때 국립지방박물관의 지자체 이관은 일정 기간 유보하면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 법적 제도적 문제점을 해결한 후 시행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가령 국립박물관 지자체 이관 5개년 혹은 10개년 계획을 세워 재정자립도가 우수한 지자체가 국립박물관을 시험 운영토록 해보고 성과를 보아가며 확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재는 한번 훼손되면 그것으로 가치를 잃는다. ‘문화재의 모체’격인 박물관 정책은 신중해야 하며 비전문가에 의한 행정위주 접근은 자제해야 옳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