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벌개혁 법제화로

  • 입력 1998년 1월 20일 20시 12분


재벌구조 혁신을 재벌 스스로에 맡겨서는 안될 것 같다. 근로자와 국민을 ‘감동시킬’ 조치를 재벌에 기대한다는 건 아무래도 순진한 발상이다. 현대와 LG그룹이 발표한 구조조정계획은 물론이고 눈치 살피기에 여념이 없는 재계 태도를 보면 왜 개혁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한 듯한 인상이다. 차기정부의 서슬에 겁먹고 마지못해 하는 개혁은 하나마나다. 주력 전문업종으로 특화하고 무리한 차입경영과 족벌경영체제를 수술하지 않는 한 재벌은 경쟁력을 회복하기 어렵다. 재벌총수들은 외채난과 국가경쟁력 저하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그러고 내놓은 개혁안이라는 게 고작 한계사업정리 등 원론적인 수준이다. 기업 부실 책임을 지고 총수재산을 회사에 출자하라는 요구에는 묵묵부답이다. 개혁 요구가 응징이 아닌 스스로의 생존과 국가경제 회생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차기정부의 개혁방향은 옳으나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 노사정(勞使政)대타협을 이끌어내기 위해 재벌들이 솔선하는 자율적 조치는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경제체질의 대수술을 통한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개혁을 제도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명분이나 당위론을 앞세워 강압적인 방법으로 개혁을 추진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총수재산 출자와 관련해 초법적(超法的)요구라는 불만이 나오는 것도 제도가 아닌 압력으로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식이기 때문이다. 변칙적인 상속 증여를 통한 부(富)의 세습을 차단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경영을 전횡(專橫)해온 총수와 가족의 재산은 부실경영 책임의 대가로 경영정상화에 쓰이도록 법제화(法制化)해야 한다. 상호출자를 매개로 얼마 안되는 지분으로 그룹을 소유하는 재벌 지배구조도 바꿀 때다. 재벌이 계속 머뭇거린다면 차기정부는 한시적인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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