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 모든 시간의…」작가 허근욱

  • 입력 1998년 1월 4일 20시 29분


작가 허근욱(68)앞에서는 ‘소설같은 인생’이라는 얘기를 함부로 할 수 없다. 허헌 북한최고인민회의 초대의장의 딸, 허종 북한외교부 순회대사의 누이. 북한에 살았더라면 특권층의 상징이었을 이런 이력들이 남한에서는 감추고 살아야 할 ‘주홍글씨’였다. 문학에 의지해 서울에서의 이방인같은 삶을 견뎌온 그가 세번째 창작집 ‘이 모든 시간의 끝에’(지혜네)를 펴냈다. 11편의 단편 속에서 그가 일관되게 그린 것은 인간을 압도하는 운명의 무자비함. 고문으로 폐인이 되거나(‘이 모든 시간의 끝에’) 80년 군부통치로 졸지에 해직기자가 된 사람(‘5월은 폭풍처럼’), 전쟁으로 남편 아들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음악가(‘그 기다림의 환영’)…. 그들이 겪는 고통은 ‘문학의 자유’를 위해 일가를 두고 남하했지만 정작 남쪽에서는 간첩으로 몰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야했던 그의 뼈저린 체험과 잇닿아 있다. 그러나 그는 작품 속 주인공들을 통해 낙관의 메시지를 전한다. ‘예고도 없이, 느닷없이 휘몰아쳐오는 인생의 폭풍’을 누구도 비켜갈 수 없지만 운명이 인간의 고귀함마저 훼손할 수는 없다고…. “스물아홉살때 사형선고 직전에 풀려난 뒤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게 됐습니다. 세속의 폭풍우는 내 내면의 정신세계를 건드리지는 못했어요. 내겐 오직 문학만이 진리의 등불이었습니다.”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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