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롤리타」번역 권택영교수

  • 입력 1998년 1월 4일 20시 29분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허리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오랫동안 여러사회에서 금지된 이름이었던 ‘롤리타’. 청교도적인 도덕의식으로 무장된 50년대 미국사회를 끔찍한 포르노그래피논쟁으로 들끓게 했던 그 책이 다시 번역됐다. 민음사 전2권. 역자인 경희대 권택영교수(영문과)는 “때로는 한 문단을 번역해놓고 기진맥진해 1시간씩 쉬어야 했다”고 고백했다. 빼어난 산문가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899∼1977)의 매혹적이면서도 난해한 문장들 때문이었다. “‘롤리타’는 뉴욕타임스 북리뷰가 선정한 76권의 20세기 명작에 토마스 만의 ‘마의 산’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과 나란히 선정된 고전입니다. 훼손되지 않은 모습으로 고전을 전한다는 취지에서 전혀 의역을 하지 않았어요.” ‘롤리타’가 악마적인 책으로 비난받았던 이유는 30대중반의 의붓아버지와 12살짜리 양녀의 육체적 사랑이라는 내용때문이었다. 책출간후 ‘롤리타콤플렉스’라는 조어까지 생길만큼 사회적 열풍을 일으켰지만 출간초기의 반응은 냉혹한 것이었다. 완고한 미국출판사들은 원고를 본 뒤 출간을 거부했고 프랑스에서도 영세한 출판사에서 겨우 출간허락을 얻었다. 프랑스 누보로망의 기수 앙리 로브그리예가 나보코프를 극찬하자 뒤늦게 미국출판사들이 출간을 결정했다. 하지만 당시 코넬대에서 러시아문학을 강의중이던 나보코프는 ‘늙은 유럽이 어린 미국을 욕보였다’는 등의 비난과 수모를 겪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남자주인공 험버트 험버트가 나보코프의 분신이 아니냐며 저자를 도덕적으로 단죄하려 들었죠. 그러나 ‘롤리타’는 대단히 은유적인 소설입니다. 남자주인공 험버트 험버트가 그토록 매달려도 단 한번도 그를 사랑해주지 않은 ‘롤리타’는 작가가 끝내 붙잡지 못하는 실재(Reality)이지요. 나보코프는 ‘롤리타’를 통해 작가가 객관적 실재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고 믿는 사실주의적 태도를 비웃었던 거예요.” 나보코프의 개인사는 불우했다. 러시아귀족의 후예지만 볼셰비키혁명과정에서 아버지와 형제를 잃고 망명해 마흔살이 넘은 뒤 이국땅 미국에서 모국어 아닌 영어로 작품활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작품 속에서 늘 자신의 얘기를 했던 나보코프에게 ‘롤리타’란 잊을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고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롤리타’는 포스트모던 문학의 선구적인 작품입니다. 그러나 번역까지 할만큼 이 작품에 매료됐던 것은 문학사적 가치때문이 아니라 사랑이란 이런 것 아닐까 하는 공감이었습니다. 자신을 거부하는 어린 롤리타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우는 험버트 험버트의 모습, 아무리 대상을 추구하고 포착하려 해도 끝내 소유 못하는 그것이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요.”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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