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캠페인]20년대 한국에선…음주단속 꿈못꾸던 시절

  • 입력 1997년 12월 22일 08시 11분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음주운전은 많았고 막기 힘든 고질병이었다. 요즘은 음주운전을 하면 엄벌을 받지만 2차 대전 이전에는 자동차가 귀할 뿐더러 운전자가 사회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던 멋쟁이들이어서 음주운전 단속도 허술했다. 테스트할 장비도 없고 단속할 법조항조차 제대로 없어 음주운전하다 사고를 내면 경찰이 임의로 사고정도에 따라 1,2개월 정도 면허정지처분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또 사망사고를 냈을 때는 일반형법을 적용했다. 특히 20년대는 음주운전 무법시대였다. 서울 부산 평양같은 대도시의 전세자동차 운전기사들은 개화에 앞장서 가던 지성파로 사회로부터 인정받던 신식 멋쟁이들인데다 고객 대부분이 상류층이어서 돈도 잘 벌었다. 이 시절 상류층의 전세자동차 이용 목적은 요정 출입과 드라이브 등 두가지가 거의 전부였다. 손님을 태우고 요정에 갈 경우 운전사는 손님과 동석, 밤새도록 즐긴 뒤 주연(酒宴)이 끝나면 물주를 태우고 드라이브하는 풍습도 있었다. 음주운전 단속법이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어서 음주운전 사고도 천태만상이었다. 동아일보 1922년 5월30일자에는 만취 운전사가 다른 차를 훼방놓다가 다리 밑으로 추락한 사고를 이렇게 썼다. 「29일 오전1시45분경 동대문밖 청량리 제1청량교에서 경기도 제86호 자동차 운전수 김종진(33)은 술에 매우 취하야 자기앞에 경기도 제112호 자동차가 있음을 보고 한번 장난을 하랴는 마음으로 자동차를 운전하야 112호 자동차를 가로막고 지나가던 바 돌연히 충돌하야 86호 자동차는 다리 아래로 떨어져 앞바퀴가 산산히 부서지고, 112호 자동차 역시 차체가 적지 않게 파손되었으며 86호 자동차에는 승객 한명이 자동차와 함께 다리 아래로 떨어져서 얼굴과 손과 기타가 부상하였다는데 손해는 86호 자동차에 1백20원이요 112호 자동차에 60원이며 운전수 김종진은 동대문서에 인치되어 취조를 받는 중이라더라」. 이 때 쌀 한가마니에 20원 정도였으니 만취한 김종진은 꽤나 큰 손해를 본 셈이다. 전영선(한국 자동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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