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New]『감원 한파』… 직장인 「말」 삼간다

  • 입력 1997년 12월 22일 08시 11분


서울 G백화점 기획실에 근무하는 이모씨(29)는 이달초 밀린 정기휴가를 다녀와서 지금까지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회사 분위기가 완연히 바뀐 것을 절감하고 있다. 상사나 동료들 상당수는 인사나 농담을 해도 묵묵부답. 회의 때는 대부분 「꿀먹은 벙어리」였다. 복도에서 한 두 명씩 모여 회사의 상황과 자신의 장래에 대해 수근거리다가 누군가 오면 입을 닫았다. 매장에 갔더니 한 직원이 이씨를 복도로 끌고가서 『살생부에 누가 포함돼 있느냐』고 물었다. 이씨는 금시초문이라고 말했으나 상대방은 믿지 않았다. IMF한파로 직장인들이 말을 삼가고 있다. 대신 마음맞는 동료와만 얘기를 나누면서 시리고 불안한 가슴을 달랜다. 유언비어와 자조적인 우스갯소리도 퍼지고 있다. 말을 삼가는 것은 회의 때 확연히 드러난다. 잘못 말했다가 「찍혀서」 감원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말을 아끼는 것이다. 돈이 드는 아이디어를 내면 면박받기 일쑤다. 사무실에서도 목소리가 낮아졌다. 서울의 의류제조회사인 G사의 김모씨(여·25)는 회사가 난방온도를 낮추어 내복을 입고 다닌다. 그는 『회사의 생수공급도 끊겨 보온병을 갖고 다니지만 불평하는 직원은 없다』고 말했다. 대신 복도나 퇴근길에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동료들끼리 자신의 장래와 관련된 「넋두리」를 많이 나눈다. 경제위기와 관련한 「썰렁한」 우스갯소리도 유행한다. 요즘은 「간 큰 직장인」시리즈가 「간 큰 남편」「간 큰 상사」 등 종전 시리즈를 대체하고 있다. 「집안」이 든든해 해고걱정을 안하는 간 큰 직장인으로는 △감봉이나 부서배치가 마음에 안든다고 불평하는 이 △지각하거나 점심시간에 늦게 들어오는 이 △여직원에게 커피 타달라고 큰소리로 부탁하는 이 △휴대전화 사서 사무실서 큰소리로 전화하는 이 △회식 빠지는 이 등이 꼽힌다. 「취업시리즈」도 유행하고 있다. 『그래도 지금 취업해야 할 대학생보다는 처지가 낫다』는 위안으로 주고받는 우스갯소리다. 자조 섞인 「취업 시리즈」로는 △식품영양학과 출신은 분식점 점원 △전자공학과는 오락실 직원 △중문학과는 중국요리집 배달원 △문헌정보학과는 만화방 점원 △신문방송학과는 신문보급소 배달원으로 취직해야 하고 △경제학과 출신은 일수꾼 △한의학과는 심마니 △해양학과는 붕어빵 장사 △화학공학과는 성냥팔이를 해야 어울린다는 것 등이 있다. IMF를 「I’m Fine」(나는 괜찮아)「I’m Falling in Love」 (나, 사랑에 빠졌어) 등으로 바꾸는 유행어가 나돌기도 한다. 이외에도 「애인을 바꾸는 것은 용서해도 직장 바꾸는 것은 용서 못한다」 「임원은 임시직원의 준말」 「거리에서 일제담배 피우는 청년의 뺨을 때렸더니 일본인이었더라」 등 IMF 한파와 관련한 우스갯소리도 자주 들린다. 〈이성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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