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규민/訪美외교 서둘 필요있나

  • 입력 1997년 12월 20일 20시 03분


김대중(金大中)당선자가 미국방문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은 외견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경제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대선 승자가 만사를 제쳐놓고 국제금융의 현장으로 달려가겠다는 의지는 신선하고도 단호한 맛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막상 그를 맞이할 미국내 조야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우선 김당선자가 만나기를 희망하는 월가 금융시장의 거물급 인사들은이구동성으로 그의 방문이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김만제(金滿堤) 정인용(鄭寅用) 두 전부총리가 비공식 특사자격으로 주요 금융인들을 만났을 때 이들은 묻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이 문제를 꺼냈다. 지금은 한국정부가 외국투자가들에게 개혁을 행동으로 보여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하지 몇 마디의 정치적 약속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말만 갖고 찾아온 차기국가원수의 호소로 문제가 풀릴 것으로 생각한다면 국제금융계의 생리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라는 충고도 나왔다. 국제투자가 소로스는 『의전상 만나기는 하겠지만 의미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고 시티뱅크의 존 리드회장도 『절박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당선자의 방문이) 분위기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빈손으로 돌아가야 할 경우의 위상을 고려하라는 충고로도 들린다. 워싱턴의 반응도 큰 차이가 없다. 외교가에서는 당선자의 방문이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합의준수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면 기자회견에서 협약준수를 선언하는 것으로 족하다는 반응이다. 미국이 그런 말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라면 직접 나서기보다는 현정부와 협조해서 구체적 조치로 신뢰를 회복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며 급하다고 말한다. 가야 할 길이 5년이나 되는 당선자가 방미를 서둘러 국내외에 가볍다는 인상을 주고 만약 불신감을 증폭시킨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신중한 결정이 요구된다. 이규민<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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