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合」,놀이서 음식까지 「생활문화 기행」

  • 입력 1997년 12월 17일 20시 49분


▼「合」<한국사회문화연구소 펴냄> 「우리의 것」을 잊고 살았던 때늦은 갈증 때문인가. 생활속에서 민족 고유의 문화를 되찾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한번 되돌아 보자. 우리는 민족문화를 이야기하면서도 「얼」을 빼놓은 채 그럴듯한 겉모습에만 달려드는 것은 아닌지. 「가옥의 미(美)를 살린다고 창살에 유리를 붙이고 그 위에 다시 종이를 발라 위장하는 따위의 가식은 전통에 대한 모독이다. 발로 밟았던 돗자리를 잘라 차탁(茶卓)위에 까는 무지를 보이지 말자」. 하회탈 조각 기능보유자인 석운(夕雲) 윤병하씨(73)는 버림받은우리 문화이야기 「합」(合·한국사회문화연구소 펴냄)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단지 집 치장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터이다.『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우리 고유의 정신이지 껍데기가 아니다』라고 그는 역설한다. 어떻게 「껍데기」와 참된 전통을 구분해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풍요한 전통문화 유산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저자의 이력 탓이다. 그의 고향은 전남 곡성. 책에서 만나는 그 터전에는 누이들 몰래 구경한 화전(花煎)놀이에서 가족들의 혼사 제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고유의 풍습이 고스란히 숨쉰다. 이 모두를 온몸으로 호흡하며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기에, 놀이에서 음식에 이르기까지 전통문화의 구체적 표현에서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그의 안목엔 거침이 없다. 그러나 그의 전통풍습 찾기는 딱딱한 강의가 되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는 고향의 풍경 및 가족이야기와 어울려 정겨운 옛이야기처럼 가슴속을 파고든다. 섣달에 세운 장승을 통해서는 마을의 협동심과 함께 새해의 신선한 기운을 받아들이는 제화초복(除禍招福)의 의미를 읽어내고 널뛰기 놀이를 통해서는 여성들의 우애 다지기와 함께 놀랍게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성교육」의 의미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고유 생활문화 기행을 통해 저자가 추구한 고유의 「정신」은 무엇인가. 그는 책 제목에서 제시한 「합(合)」으로 이를 설명한다. 그에게 「합」이란 자연과 인간의 조화이고 사람과 사람의 합침이며 이웃과 이웃의 화합이다. 이 정신이 깨질 때 인간은 문명 안에서 스스로 죽임을 당하고 만다는 점을 그는 역설한다. 그 「합」의 정신은 우리가 무심코 걸으며 딛는 발걸음의 장단 속에서, 전래의 문양 속에서 우리의 몸속 깊이 배어 있다는 결론이다. 〈유윤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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