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래정/재경원 독단에 놀아난 경제

  • 입력 1997년 12월 11일 19시 59분


최근 금융위기의 한 원인이 재정경제원내 일부 관료의 독단을 견제할 만한 체제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데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재경원은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 신청전 민간전문가들의 환율관련 발언을 여러 경로로 봉쇄했다. 이 때문에 일부 국책연구소 연구원들은 IMF협상이 진행될 때 『정책실기(失機) 당사자들이 협상을 주도하는 것은 문제』라고 우려를 표시한 적도 있다. 국책연구소 연구원들의 「침묵을 깬」 경제진단의 내용에 언론이 관심을 쏟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반(半)국책연구소인 한국금융연구원은 위기배경 및 IMF구제금융의 영향 등 국민적 관심사에 가장 적극적으로 연구결과를 내놓은 곳으로 꼽힌다. 그런 금융연구원이 지난주부터 언론과의 접촉을 끊고 있다. 우연일지 몰라도 재경원 책임자에 대한 문책론이 제기된 시점과 일치한다. 연구원측은 명확한 배경을 밝히진 않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연구위원들은 『아직도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 재경원이 버티고 있는데 괜히 나서다 유탄을 맞는다』고 말했다. 최소한 이번 「침묵」이 재경원을 염두에 둔 것임을 시사한다. 이런 상황에서 재경원의 독단은 가속도가 붙었다. 시급한 문제인 달러유입만 해도 그렇다. 민간연구소 등과 외국투자가들은 『부실금융기관을 하루빨리 정리하라』고 다그치는데도 정부는 부실 금융기관의 「회생」쪽에 매달리다 실기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의 미적거림속에서 우리 경제의 기초인 실물부문은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 경제정책은 시장참가자들의 기대심리 등을 정확히 반영, 미래를 내다볼 수 있어야 효과를 거둔다. 재경원이 숱하게 내놓았던 대책들이 오히려 금융시장을 마비시킨 것은 대책들이 「시장에서 동떨어져」있기 때문이다. 시장을 보다 잘 아는 전문가들, 그리고 시장에 참여한 국내외 경제주체들의 마음을 겸허하게 읽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박래정(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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