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후보검증의 새 모델

  • 입력 1997년 11월 27일 20시 03분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가 잇따라 열리는 동안 유권자들의 가장 큰 요구는 주요 후보들을 함께 불러 후보 상호간에 토론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 토론회가 국내 선거사상 처음으로 실현돼 선거문화 향상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법정선거운동 첫날인 26일 저녁 본보가 주최한 3당 대통령후보 첫 합동토론회는 후보간 직접 비교의 기회를 제공, 후보검증의 새 모델이 됐다. 본보 발행인이 26일자 「대선(大選)에 임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지적했듯이 선거문화를 한 차원 높이려면 후보들이 비방과 인신공격을 지양하고 정책으로 경쟁해야 한다. 이번 합동토론회는 바로 그런 정책대결 중심의 선거운동방식이 자리잡을 수 있을 것임을 증명했다. 특히 국정파탄의 책임규명 방법, 고용안정대책, 임금 가이드라인 필요 여부, 의료보험 통합문제 등에서 후보들은 차별성 있는 정책을 선보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형편이 됐으므로 기존 공약을 수정할 용의가 있다는 성숙한 답변도 나왔다. 다만 대북관계 같은 예민한 문제에서는 후보들이 비슷한 「모범답안」을 제시해 차별화를 포기했다. 경제추락의 책임소재나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의 관계 등에서는 가시돋친 설전(舌戰)을 주고 받았다. 자칫 비방전으로 비화할지도 모를 긴박한 분위기였으나 후보들은 한계를 지키며 공방을 벌였다. 비방을 자제하라는 것은 잘잘못까지 따지지 말라는 게 아니다.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 정치분야 공방은 토론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유권자의 판단에도 도움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책임논쟁에서 후보들은 상대의 책임을 부각하려 했을 뿐 겸허하게 자성하는 태도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국민은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겸손하게 반성하는 자세에서 감동을 받는다는 사실을 후보들은 알아야 한다. 후보들은 이날 자제했지만 비방전이 재현할 소지는 많다. 각 후보진영은 판세변화를 위해 상대 헐뜯기의 부정적 선거운동(네거티브 캠페인)을 펼치고 싶은 유혹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부정적 선거운동은 차제에 포기해야 한다. 많은 국민은 그런 선거운동방식에 혐오를 느낀다. 참모들의 부정적 선거운동도 결국은 후보 자신의 책임이다. 이번 합동토론회는 정책의 차이를 좀더 확연히 드러내고 후보간 토론을 늘리기 위해 시간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는 과제를 남겼다. 이런 문제들이 보완되면 12월 1,7,14일의 TV3사 공동중계 합동토론회는 더욱 성공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1960년 미국에서 케네디와 닉슨 사이에 시작된 대선후보 토론회가 이땅에서도 뿌리를 내리려 하고 있다. 그 가능성은 이미 입증됐다. 각 후보진영은 남은 20일 동안 생산적인 정책경쟁을 벌여 국민의 선택을 받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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