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사회 불교 열풍…佛에만 신자 10∼60만명

  • 입력 1997년 11월 15일 20시 29분


곳곳에 생겨난 명상센터, 불티나게 팔리는 불교관련 서적, 에어로빅보다는 참선, 육식보다는 채식, 「알루미늄캔은 환생할 가치가 있다」는 쓰레기 재활용문구…. 서구사회에 불교바람이 일고 있다. 이성과 합리성에 기대고 살아온 서구인들이 상대적 진리를 존중하는 불교의 오묘한 세계에 빠져들고 있다. 어렵사리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참선을 하거나 동양의 심신수련법을 연마하는 서구인들은 더는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다. 영화와 각종 상품광고에도 승려나 불경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에서는 소년 달라이라마의 스승이 된 오스트리아 산악인의 티베트견문록 「티베트에서의 7년」이 영화로 만들어져 상영되고 있다. 달라이라마의 삶을 그린 마틴 스코세지 감독의 「쿤둔」도 크리스마스에 개봉될 예정이다. 유럽에서 불교활동이 가장 활발한 나라는 프랑스와 독일. 프랑스의 불교신자는 10만∼60만명으로 추산된다. 프랑스인 4명중 1명이 불교의 인과응보와 윤회를 믿는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종파별 불교협회가 4개, 티베트불교 선불교센터가 각각 80여개, 불교연구소가 설치된 대학도 30여곳이나 된다. 알프스산맥 근처의 도시에는 티베트 분위기를 재현하는 명상센터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올해 상반기에 20여권의 티베트불교 관련서적이 출간됐고 「불교의 힘」이라는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독일에도 1백여개가 넘는 선(Zen)센터가 소도시에까지 퍼져 있고 20여개 대학에서 불교학을 연구하고 있다. 독일의 불교신자는 4만5천여명으로 추산된다. 미국에서도 티베트불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티베트불교붐은 89년 중국정부에 의해 추방된 달라이라마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최고조에 달했다. 펑크 그룹 비스티 보이스는 티베트 독립을 기원하는 콘서트를 두차례 가졌으며 리처드 기어, 알렉 볼드윈, 맥 라이언, 골디 혼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티베트불교에 심취해 있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서점 아마존사이트를 검색하면 달라이라마의 자서전 「망명중의 자유」를 비롯해 1천2백여권의 불교서적을 찾을 수 있다. 안톤 손탁 신부(프랑스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무총장)는 이를 『사회적 시대적 불안에 대한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서구인들은 80년대말 냉전의 종식으로 공산주의란 적과 함께 삶의 방향감각도 잃어버렸다. 광우병 확산사건 같은 것은 진보에 대한 믿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런데도 기독교는 대안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리의 유일한 기준이 개인의 체험에 있음을 일깨우는 불교가 새로운 대안으로 서구사회에 파고들고 있다. 기독교는 낙태 안락사 피임과 같은 첨예한 쟁점들에 대해 교회 차원에서 입장을 정리해 신자들에게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 이에 비해 불교는 신도들에게 체험을 통해 자기 방식대로 깨달음을 얻도록 가르친다. 죽은 후에도 환생을 통해 자아와 인격의 동일성이 유지될 수 있다는 윤회사상은 죽음에의 공포를 덜어주기도 한다. 더욱이 서구에 보급된 불교에는 죄 벌 지옥에 대한 관념이 없어 서구인들의 쾌락주의와 개인주의에 잘 부합한다. 손탁 신부는 『여성, 특히 인간의 고통 및 죽음과 자주 접하는 간호사 의사들은 환생과 윤회사상에 깊이 경도돼 있다』고 말했다. 〈김세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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