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로 뛰는 대학/동덕여대]실용적 인재 키운다

  • 입력 1997년 10월 31일 08시 02분


동덕여대는 1950년 개교했지만 창학의 뿌리는 이보다 훨씬 전인 19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는 일제침략으로 위태로워진 조국의 운명을 교육사업을 통해 구하려는 선각자들이 사학을 설립하기 시작했던 때. 춘강 조동식(春江 趙東植)선생은 약관의 나이에 여성교육에 뜻을 두고 1908년4월 동원여자의숙을 설립했다. 1910년에는 동덕여자의숙을 인수한 뒤 교명을 「동덕고등여학교」로 바꾸어 오늘날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갖춘 동덕의 기반을 마련했다. 초기의 사립 여학교들은 외국 선교사나 왕실에 의해 세워졌던데 비해 동덕은 순수 민간의 힘으로 설립된 최초의 학원이어서 동덕인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일제의 갖은 탄압을 이기고 명맥을 유지하면서 보통교육 보급에 힘써온 동덕고등여학교를 기반으로 드디어 1950년5월 국문과 상학과 가정학과로 구성된 동덕여대가 설립됐다. 6.25전쟁의 혼란기를 거쳐 1957년 처음으로 졸업생 57명을 배출한 이래 현재 6개 대학원,8개 단과대, 9개 학부, 7개 학과에 걸쳐 7천여명이 재학하고 있는 대학으로 발전했다. 개교 47년동안 배출한 졸업생은 1만5천여명. 도의적 인격과 학식을 갖추고 사회와 화합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뜻에서 도의 진리 화협(和協) 세가지를 교훈으로 삼고 있다. 재단인 동덕여학단(女學團)의 이사장은 2대 총장을 지낸 조용각(趙容珏)박사이고 교훈을 형상화한 「동덕의 여인상」이 학교상징물. 동덕여대는 특히 현실과 접목된 특성화 교육을 위해 서울 청담동 로데오거리의 디자인대학, 인사동의 동덕아트 갤러리,대학로의 공연예술대학 등을 활용하고 있다. ▼디자인 연구센터〓지난해 본교에 있던 디자인대학본부를 패션의 거리인 로데오거리로 옮겨(1천3백여평의 6층건물) △산업디자인학과 △의상디자인학과 △컴퓨터디자인학과의 모든 전공교육을 이곳에서 실시하고 있다. 디자인은 실용화가 생명인만큼 패션시장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현장을 파고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런 교육정책에 회의적이던 일부 학교관계자들도 지금은 그 안목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오티스 조형예술대는 아예 패션시장 복판으로 옮겨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소비자―시장―업계를 곧바로 연결하려는 것이 세계적 추세인 것이다. 수업도 학생들의 실무능력을 높이기 위해 세미나와 실습위주로 한다. 특히 이신우 이영혜 민영백씨 등 디자인계의 유명인사를 겸임교수로 초빙, 생생한 산교육과 함께 산학공동 프로젝트를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또 디자인전문 갤러리도 갖춰 학생들이 실제로 패션쇼를 개최할 수도 있다. 최근 졸업작품 발표회에 맞춰 세계적 패션 거장인 「스튜디오 베르소」의 마리 뤼키를 초청, 심포지엄을 갖기도 했다. ▼동덕 아트갤러리〓지난 8월 대표적 화랑가인 인사동에 위치한 동덕빌딩에 2백평규모의 대형전시장을 마련했다. 이는 일반 상업화랑과 같이 작품전시 기능 뿐만 아니라 미술학부가 화랑업계와 산학협동을 할 수 있는 자체 공간을 확보, 미술교육의 현장감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내년에는 미술학부에 큐레이터 전공이 신설되기 때문에 이곳에서 공개강좌 등을 통해 미술의 대중화와 교양교육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공연예술센터〓내년에 공연예술대학을 설립,실용음악과 무용과 방송연예과에서 대중예술 전문가를 집중 육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대중 공연예술의 중심지인 동숭동 대학로에 건평 1천6백평 규모의 공연예술센터를 99년2월까지 준공, 대형 공연장과 무용실 음악실 TV촬영실 공연연습실 강의실 등을 갖출 예정이다. ▼사회봉사 능력개발과정〓국내 대학중 처음으로 95년 사회봉사 과목을 교양 필수과목으로 채택, 2학년은 48시간 이상 양로원 고아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해야한다. 또 내년부터 능력개발 특별과정을 설치, 영어 컴퓨터 등의 과목을 35학점이상 이수하면 직업수행능력을 보증하는 인증서를 발급, 취업 등에 도움이 되도록 할 방침이다. 〈이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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