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도성/가지 말아야 할 길

  • 입력 1997년 9월 2일 19시 54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대선전이 갈수록 가지 말아야 할 길로만 내닫는 느낌이다. 병역이니 색깔이니 하는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도를 넘는 인신공격성 헐뜯기가 난무하는 것은 흔히 보아온 구태(舊態)이니 또 그렇다치자. 정작 암담한 일은 언필칭 「21세기」 운운하며 『내가 새 시대의 지도자』라고 앞을 다투는 정치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하루살이식」 언행들이다. 구세대니 신세대니 가릴 것도 없다. 「어제」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고 무슨 다짐을 했든 그것은 이미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 하루살이式 대선공방 ▼ 그저 「오늘」만 있을 뿐이다. 다시말해 「표」만 보이면 당장 눈앞의 정치적 이문(利文)을 좇아 어제의 「나」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어김없는 오늘의 현실이다. 「돈」만 보이면 무엇이든 내던지고 무슨 일이든 감행할 수 있다는 시정(市井)의 장삿속이 무색할 정도다. 요즈음 집권여당으로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혼란상을 빚고 있는 신한국당의 속사정도 그 연원을 따져 보면 하루살이식 행태가 판을 치는 내부 풍토에 초점이 맞춰진다. 야권까지 끼여든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씨 등 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석방과 사면 문제만해도 이렇게 전개될 일은 아니다. 석방 및 사면의 당 부당에 앞서 왜, 그리고 지금 이를 제기하는지에 대한 정치인으로서의 책임있는 자세와 국민을 향한 소구(訴求)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뜻이다. 전, 노씨 석방 및 사면에 대한 찬반의 입장과 연관시켜서 무슨 주장을 늘어놓자는 건 아니다. 적어도 「내일」을 책임지겠다는 정치인이라면 불과 몇달 전 대법원에서 「역사바로세우기」로 결론이 난 일이 왜 오늘의 「국민대통합」이라는 등의 논리 적용의 대상으로 뒤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 성의있게 설명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현재 여권을 혼란의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는 이인제(李仁濟)경기도지사 문제도 근원은 마찬가지다. 당의 이회창(李會昌)후보가 아들들의 병역면제 문제 등으로 인해 여론의 지지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계속 상승세를 타는 이지사로서는 「딴 맘」을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경선탈락자의 말처럼 「사정변경의 원칙」이 적용돼야 할 상황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의 이같은 상황이 어제의 약속파기와 언행 뒤집기까지 정당화해 줄 수 있느냐는 별개다. 경위나 속마음이야 어떻든 신한국당 대선후보가 되겠다고 나섰던 주자들은 불과 한달여 전의 경선과정에서 대의원들 앞에서 경선결과에 승복하고 당의 단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각서에 서명날인까지 했다. 물론 무슨 약속을 어떻게 했든 후보에게 특별한 변고가 생겼다거나, 혹은 승리가 무망하다고 결론이 난다든지 하면 후보를 바꿀 수는 있는 일이다. ▼ 「어제」팽개치면 「내일」없다 ▼ 그러나 공당이라면 어디까지나 공론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상식이요 순리다. 특히 승리 무망의 사유라면 누가 됐든 합심해서 판세 반전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느냐, 다시 말해 후보를 승복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도 중요한 관건이다. 팔짱끼고 수수방관하고 있다가 「당신은 안되니 물러나든지, 그렇게 못한다면 내가 나가겠다」는 식의 자세는 이지사가 되뇌는 당당한 길도, 정도(正道)도 아니다. 이지사든 누구든 「어제」를 내팽개치는 행태로는 결코 「내일」의 비전과 믿음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도성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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