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김석중씨 농촌소설 「구름 걷어내기」펴내

  • 입력 1997년 9월 2일 07시 39분


오랜만에 농촌소설을 읽는다. 이문구의 「관촌수필」 이후 20여년만에 우리곁을 찾아온 김석중의 연작소설 「구름 걷어내기」(열림원). 문학사가들 사이에서야 농촌소설의 엄밀한 정의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있어왔지만 우리 평범한 독자에게 농촌소설이란 농촌 이야기, 농촌사람 이야기, 그리고 농촌출신 도시사람 이야기로 이해되어도 좋지 않을까. 「관촌수필」이 70년대 충청도에 내던져진 농민들의 인생유전을 통해 6.25의 후유증을 그렸다면 「구름 걷어내기」는 광주민주항쟁 이농현상 소값파동 등 정치적 억압과 근대화의 그늘 속에서 황폐해진 농촌의 90년대 삶을 그리고 있다. 이 시대 농촌풍경의 밑그림이 될 수밖에 없었던 80년대의 어둠이 구체적 삶을 통해 생생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80년대초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던 농촌출신 작가 김석중의 이 소설은 이야기로서의 흥미와 박진감, 그리고 그 속에 숨어있는 아련한 슬픔까지를 모두 담아내고 있다. 이야기는 전남 함평의 구수하고도 질퍽한 남도사투리와 함께 흘러간다. 80년 광주에서 장남을 잃고 차남은 학생운동으로 투옥되고 그로 인해 면장직에서 쫓겨난 박준호씨, 친구가 국회의원이 되는 바람에 졸지에 지구당 부위원장을 맡아 갑작스레 삶이 흔들리는 농부 주상근씨, 묵묵히 농사에 매진하고 동생들 학비까지 대주는 장남의 며느리감이 서울에서 한때 밤일을 나갔었다는 사실을 알곤 혼자서 고민하는 대선 양반 김용식씨 등 등장인물은 모두 익히 봐왔음직한 농촌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은 익살과 해학으로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그러나 작가의 예리한 눈은 그 이면의 모순을 놓치지 않는다. 집요하게 파고들어간 모순 속에서 작가가 건져올린 건 뿌리깊은 슬픔, 혹은 생선비늘처럼 번득이는 슬픔의 싱싱함. 「구름 걷어내기2」를 보자.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어린 자녀들을 키워야 하는 상동댁. 가슴이 찢어지고 숨이 막힐 듯한 통증에 시달리지만 병원을 찾아도, 약을 먹어도 효과는 없고. 그러던중 한동네 아줌마가 기발한 치유법을 알려주는데, 바로 「몸 좀 풀라는 것」. 예측 못했던 반전도 매력적이지만 한 농촌여인의 비극적 삶에 가슴 저미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한편 두 편 읽어가며 남도사투리가 익숙해질 무렵이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있다. 소설 속의 문제들이 실은 도시 농촌 가릴 것 없이 우리 모두에게 산재해 있는, 그러나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문제라는 사실이다.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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