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연변 시인 김철씨 「북한기행」펴내

  • 입력 1997년 9월 2일 07시 39분


『금강산의 절경은 도저히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더군요. 「왜 이런 곳을 남녘의 형제들은 볼 수 없을까」 가슴이 아팠어요. 날씨가 맑은 날에 구룡봉에 오르면 설악산도 보인다는데…. 해금강에서 속초는 바로 코앞이라는데…』 중국 연변의 교포시인 김철씨(65). 그토록 밟고 싶었던 북녘땅. 조국의 반쪽. 그러나 왠지모를 시름이 가슴 깊이 차오른다. 닫혀진 시간 속에 잊혀진 땅. 그래도 산과 강은 눈이 시리도록 여전한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시인의 한숨소리를 듣는지 마는지 무심한 멧새들은 구름밭을 지나 저 멀리 남쪽으로, 남쪽으로 날아가고…. 김씨는 평생 떠돌이다. 일제에 조국을 빼앗긴 식민지의 아이로 자라 만주땅으로 건너가 이국의 설움을 견뎌야 했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두동강 난 조국의 이쪽 저쪽, 그 어디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유랑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지금 중국 2백만 교포를 대표하는 민족시인이자 2억인의 소수민족 문학을 이끌어 가는 1급문인. 중국 문인으로는 최고 영예인 계관시인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채워지지 않는 망향의 그리움으로 마음은 언제나 빈한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그동안 철책과 총부리의 숲으로 가려있던 금단의 땅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읊은 통한(痛恨)의 시편들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북한기행」(문학사상사). 그의 발길은 휴전선을 지척에 둔 개성과 붉은 깃발이 나부끼는 평양, 금강산과 백두산, 원산 청진 신의주 등 「그리운 방방곡곡」을 훑고 있다. 「상여가 떠나간다/…/장렬은/유령처럼 흐른다//집 앞 헐벗은 은행나무에/걸려 있는 흰 천조각 하나/혼백을 보내는 여윈 손길처럼/젖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밤하늘에 날리고 간/마지막 남긴 말은/『저승에 가면/주린 배를 채울 수 있겠지요』…」 그는 신의주에서, 청진에서, 굶주림으로 죽은 사람을 운구하는 장례행렬과 마주쳤다. 죽음의 땅, 죽어가는 유령 도시의 참담함은 서정의 시심(詩心)을 밀쳐낸다. 「…중턱에서 쓰러진 어머니는/마지막 한 알 통강냉이를/젖먹이 손에 쥐어주며/피보다 진한 눈물을 흘릴 때//이슬비에 돋아나는/파아란 봄보리…」 북한의 형제들이 봄보리가 돋아나는 보릿고개를 바라보며 허기진 모습으로 가파른 황톳길을 기어오르는 모습이 눈에 아프게 밟힌다. 『북한의 생활상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예요. 오죽하면 신고 있던 양말까지 벗어주고 왔겠습니까. 그러나 「정치를 떠나 백성들은 정말 순수하구나」라는 진한 감동도 있었지요』 서울에서 개성까지 겨우 70㎞. 자동차로 한시간 거리. 그러나 우리는 북녘을 모른다. 외신을 통해 드문드문 소식을 들을 뿐. 언제던가. 지구 반쪽을 돌아 우리 곁에 날아온 북한 어린이의 사진 한장. 제대로 먹지 못해 핏기하나 없는 아이의 얼굴. 빈 그릇을 바라보는 무구한 눈망울. 그 천진난만한 표정에 안타깝게 배어나던 배고픔의 하소연. 동족의 무심함을 꾸짖는, 잠자고 있던 양심을 세차게 흔들던 사진 한장의 충격이 아직도 선연하다. 『남북을 오가면서 남녘은 풍요와 포만의 비극이, 북녘은 빈곤의 비극이 휩쓸고 있지않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영원히 맞닿을 수 없는 이 극단의 비극이야말로 앞으로 통일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지나 않을지…』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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