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퇴직금 우선변제 위헌판결

  • 입력 1997년 8월 22일 20시 08분


기업의 도산으로 일자리를 잃고 퇴직금만 기다리는 근로자에게 청천벽력같은 판결이 내려졌다. 헌법재판소는 21일 기업이 파산했을 때 근로자의 퇴직금을 다른 채무보다 우선변제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37조 2항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이미 기업이 도산, 퇴직금이 청산되지 않은 근로자는 물론 앞으로 도산할 기업의 근로자가 퇴직금 전액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되었다. 퇴직금이 유일한 위안인 도산기업 근로자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충격이다. 지금와서 헌재결정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퇴직금 우선변제는 담보물권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헌법과 합치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반박할 논리도 약하다. 뿐만 아니라 사용자와 근로자는 기업의 일체적 운영주체인데도 기업도산에 일부 책임이 있는 근로자가 우선보호되는 것은 경제정의 차원에서도 부당하다는 논리를 전면 부정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임금근로자에게 퇴직금은 최후의 생존기금이다. 특히 기업의 도산으로 갑자기 임금소득이 끊기는 근로자에게 퇴직금은 재취업때까지 버틸 수 있는 생명줄과 같다. 기업이 망해 일자리를 잃은 것도 충격인데 그런 퇴직금마저 전액 보장받지 못하게 된 도산기업 퇴직근로자의 절망을 남의 일로 여겨서는 안된다. 퇴직금은 근로자가 적립해 놓은 후불적 임금이라는 것이 73년 대법원 판결이다.근로기준법은 퇴직금을 지급할 수 있는 제도를 기업이 의무적으로 설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인세법은 기업의 퇴직소득충당금을 손비로 인정하고 이 충당금을 담보로 제공한 경우에는 손비인정을 취소한다는 내용을 시행령에 규정해 사실상 퇴직소득충당금의 질권설정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사외에 적립한 퇴직소득충당금계정이 있는 경우 그 수령권해석 과정에서 근로자의 권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헌재결정으로 근로기준법 퇴직금 우선변제 조항의 개정은 국회에 맡겨졌다. 국회는 근로자의 생존권보호 차원에서 개정내용을 최대한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손질해야 한다. 퇴직금 전액대신 가령 최소 몇년분 또는 일정비율의 퇴직금만은 우선변제혜택을 받을 수 있게 법을 고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변제와는 별도로 기업이 망하더라도 퇴직금이 최대한 확보되도록 법제를 보완하고 개발해야 한다. 퇴직준비금을 매달 금융기관에 적립해 노사가 엄격하게 공동관리하게 하는 대만 등의 예는 참고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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