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 뒤안길]김창혁/개혁특위 「숫자놀음」

  • 입력 1997년 7월 31일 20시 57분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구성안 등을 놓고 여야가 격돌 일보직전까지 치달은 30일 낮 국회의장실. 金守漢(김수한)국회의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朴熺太(박희태·신한국당) 朴相千(박상천·국민회의) 李廷武(이정무·자민련)총무는 여야 18인으로 특위를 구성키로 잠정합의하면서도 마지막 샅바싸움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웠다. 「여야 18인 특위」는 여당이 주장하는 의석비례 특위가 될 수도, 야당이 요구해온 「동수 특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18명을 의석비율로 배분하면 각각 9(신한국당):5(국민회의):3(자민련):1(무소속)이 된다. 결국 여당 9명, 야당 9명이 되는 셈이다. 3당총무는 이미 그런 계산을 해놓고 있었다. 여야 총무실 관계자들은 『만약 협상이 안될 경우 여당은 「의석비율로 구성했다」고 발표하고 야당은 「동수로 합의했다」고 발표하면 그 뿐』이라며 『어차피 결과는 같은 것 아니냐』고 귀엣말을 나누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박상천총무가 내심 느긋해 한 이유는 또 있었다. 「여당은 법안처리에 필요한 과반수를 채울 수 없음. 현재 1백58명중 6명은 외유, 2명은 구속수감중이고 국회의장까지 빼면 소속의원들을 100% 동원해도 1백49명에 불과, 과반수 미달」이라는 보고서를 받아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총무는 본회의에 불참한 채 밀어붙이기만 하면 여당은 법안처리를 할 수 없고 결국 「18인 특위」가 의석비례에 따른 것이 아니라 「여야 동수」 합의에 의한 것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결과는 박총무의 계산대로였다. 「정치협상」인 것도 같고 「머리싸움」인 것 같기도 한 밀고당기기였다. 〈김창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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