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현진/「인터넷 무역」 美특사단의 오만

  • 입력 1997년 7월 15일 20시 23분


국내 주요기업 정보담당 임원 20여명은 지난 14일 빌 클린턴대통령의 수석보좌관 등 미국 특사단과 인터넷무역 무관세화 등에 관한 간담회를 가졌다. 그러나 그 개최과정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우리 기업인들이 연락을 받은 것은 지난 10일 전후. 주한 미대사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한국 CALS/EC협회측이 회원들에게 급작스럽게 14일 시간을 내줄 것을 요청한 것. 이들은 당황하면서도 인터넷상거래에 관한 미국측 입장을 듣기 위해 스케줄을 취소하고 참석했다. 그러나 미국측이 우리 정부와 협의도 없이 자신들을 일방적으로 「소집」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개운치 않았다. 『미국측이 정부와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우리 민간업체 사람들을 불러내 만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마치 자국 기업인처럼 대하는 것 같아 서글프기까지 했다』(한 참석자). 이에 대해 미국측은 『민간업체 위주로 인터넷 상거래 협정을 도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누차 강조했지만 『그럼 왜 미국에서는 민간 쪽이 아닌 정부측이 우리를 만나느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미국측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국가간 협의없이 민간부문에서 결정한 사항이 국제규격으로 채택된 전례가 없기 때문. 한 참석자는 『인터넷기술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미국이 민간을 강조하는 것은 사사건건 반대할 가능성이 높은 정부를 사전에 배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 특사단은 간담회가 끝난 뒤 통상산업부와 정보통신부의 실장급 관리들을 만났다. 특사단은 이 자리에서 인터넷 무관세영역에 관한 협정을 세계무역기구(WTO) 등의 국제기구에서 정부간 협상을 통해 논의하자고 했다. 수시간전의 민간 간담회때와는 1백80도 달라진 태도로 미국측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더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날 우리 정부측은 특사단을 만날 때까지 미국측 주장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 대응 발표를 번복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1세기의 새로운 무역전쟁터가 될 지도 모르는 「인터넷 라운드」. 이대로라면 우리가 설 자리는 넓어 보이지 않는다. 朴賢眞기자<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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